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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이야기 - 줄리언 무어 [3]

<파 프롬 헤븐>

줄리언 무어는 <사랑의 이름으로>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만나게 된 오랜 남자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바트 프로인들리히와의 사이에 현재 두 아이가 있다. 97년 12월 첫째아들 칼이 태어났고, 지난해에 태어난 “푸른 눈이 백설공주 같은 둘째딸” 리브는 오는 4월 돌을 맞는다. “아이를 낳은 건 인생의 최고의 경험이자 축복이에요. 모성애는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죠.” 그는 아이들과 누구보다 밀접한 교감을 나누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보모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키워내고 있다. 이는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자신에게 날아온 모든 시나리오를 꼼꼼히 직접 읽는 그의 작업태도와도 일맥 상통한다. 덕분에 아들 칼은 피가 튀고, 엽기적인 행각이 난무하는 <한니발>의 촬영현장에 매일 엄마와 함께 출근했을 정도였다. “앤서니(홉킨스)는 칼에게 ‘스스스스습~’ 하는 렉터 박사가 입맛 다시는 소리를 가르쳤어요. 지금도 칼에게 ‘앤서니!’라고 하면 금방 ‘스스스스습∼’ 하는 소리를 낸다구요. (웃음)”

<파 프롬 헤븐>은 둘째딸 리브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촬영되었는데 매주 달라지는 배 사이즈 때문에 의상디자이너 샌디 파월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디 아워스>는 임신한 배를 그대로 드러낸 상태로 촬영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가족드라마에 집착하느냐고 묻지만 내 생각에 모든 위대한 드라마는 가족적 상황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한번도 여왕도 공주도, 어떤 종류의 대단하고, 영웅적이고, 신비스러운 캐릭터도 해보지 못했어요. 최근 끝낸 두 작품 모두 슈퍼히어로도 등장하지 않고, 우주선도 레이저광선도 안 나와요. 대신 그들의 결혼과 그들의 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다루죠.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누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말해요. 물론 세상을 구하는 것과 에펠탑에 오르는 것에 대해 쓸 수도 있지만, 대부분 드라마는 그들의 어머니나 남편, 아내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녀는 코미디를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 <에볼루션> 감독 아이반 라이트먼

2001년 그가 아이반 라이트먼의 <에볼루션>에 출연한 것은 그간 ‘심각한’ 영화들을 오간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는 조금 튀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왜 스튜디오영화에 출연하는지 물어오면 난 아주 당황스러워요. 마치 사람들에게 배우는 돈쓸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생각되나봐요.” 또한 이 영화는 “한번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슬랩스틱코미디를 해본 적 없는” 그로서는 새로운 방식의 도전이었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는 건 쉽지만 코미디를 제대로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코미디는 믿지 못할 만큼 엄청난 양의 기술이 필요하죠. 만약 리듬이 잘못되었을 때, 음악이 적절치 못할 때, 그건 전혀 웃기지 않게 되는 거니까요.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새로 시작해야 되는 거죠.”

<숏컷>

<한니발>

그는 가족의 행복을 기도하는 건전한 식탁에서 요부의 침대로 매끄럽게 이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천재와 백치가 종이 한장 차이란 걸 체득하고 있으며, “내 장기는 비극이다”라고 말하지만 동전의 뒷면에 희극이 있음을 안다. 이 본능적 균형감은 그의 작품선택의 규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나인먼쓰>와 <쥬라기 공원>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 사이엔 <부기 나이트>나 <세이프> 같은 저예산영화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다. “뭐 그건 그렇게 떠벌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단지 나는 늘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찍고 싶은 것뿐이에요.” 이런 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은 군법관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알래스카를 포함해 23개국을 유목민처럼 돌아다녔던 남달랐던 성장과정에서 익힌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룰이 있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가장 빨리 그 집단간의 미묘한 차이를 끄집어내어 적응하는 법을 배웠죠. 그리고 그 안에서 유니버설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어요.”

“역할에 효과적으로 빠져드는 무어의 능력은 가끔 영화 속에서 자신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심지어 <위대한 레보스키>를 볼 때는 20분쯤 지나서 그녀를 알아보았을 정도였다.” - <애수> 감독 닐 조던

줄리언 무어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는 줄리언 무어이지만, 어떤 것도 진짜 줄리언 무어는 아니다. 이 궤변은 결국 그의 증언으로 증명된다. “관객은 당신을 보러 영화관에 오지 않아요. 자기 자신들을 보기 위해 오죠. 그때부터 당신은 더이상 당신 자신일 수 없어요. 그들이 되어야 하는 거죠.” 감독들은 가끔 줄리언 무어가 “본인의 풍부한 매력이나 카리스마를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는 “내가 실제 생활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방식대로 영화에서 노래하고 춤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러니 보스턴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해서 학사학위를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 초에 인기 TV드라마 <에즈 더 월드 턴> 등을 거쳐 서른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이 엘리트 코스의 재능있는 배우를 이제와 새삼 되돌아보게 된 데에도, 우리의 무심함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자. 그와의 숨바꼭질은 끝난 것이 아니다. 모성애로 데워진 온기있는 심장과 기품있는 관능의 광채 그리고 불안과 안정의 기묘한 동거가 불러온 디테일한 연기로 무장한 이 배우는 기회만 생기면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들 테니까. 하지만 걱정하지도 말지어다. 예산의 규모도, 역할의 비중도 “크기는 문제가 안 된다”(Size doesn’t matter)라고 장담하는 이 ‘제작자들과 감독의 뮤즈’는, 젖과 꿀이 흐르는 할리우드의 호사스러운 여왕으로 군림하는 대신, 싫증과 변덕이 널을 뛰는 이 메마른 사막에서 한결같은 어머니로 오랫동안 건재할 테니까.

“많은 여배우들은 어떻게 하면 주인공을 따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줄리언 무어의 본능은 그 반대다. 그녀는 되도록 표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부탁한다. 나는 어떤 영화에서도 줄리언 무어를 본 적이 없다.” - <세이프> <파 프롬 헤븐> 감독 토드 헤인즈 백은하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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