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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독일, 현실적으로 영화관람 관련법 개정

애들은 엄마, 아빠 하기 나름이에요

영화관람과 관련된 청소년보호법? 까놓고 말해 그 법 문구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중·고생 교복만 걸쳤다 하면 웬만한 극장의 출입이 곧장 정학으로 이어지던 시절에도 교복 칼라를 애써 뒤집고 변두리 3류 극장에 잠입, 어찌보면 불륜을 미화 내지 부추기는 <애수>(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이기에)에 눈물 쏟던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미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아예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 계기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과 랩 영웅 에미넴이 폼나게 ‘영화배우’ 타이틀을 추가했던 이다.

많은 어린이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반지의 제왕> 속편은 끝없이 이어지는 살육전의 소음을 감안, 독일에서는 12살 이상 관람가 딱지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열살배기 꼬마들이 영화관의 어둠을 틈타 들어와 12살 이상을 빙자하며 이 피로 얼룩진 현장에 동참했던가! 게다가 마약, 폭력, 섹스로 얼룩진 미국 어느 마을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은 수주 동안 독일 초등학교 꼬마들의 테마 넘버원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영화관람 허가와 관련해 6살, 12살, 16살, 18살, 이렇게 4개 기준으로 관람가 딱지를 발급해왔다. 그러나 표 팔기에 급급한 극장들이 무슨 짬이 나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지 못한 어린이들의 생년월일을 일일이 확인할 것이며, 어떤 경찰이 한참 영화가 돌아가고 있는 극장을 급습해 쥐덫 놓듯 검문을 벌일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독일 영화청소년보호법은 아예 비현실적인 구태를 훨훨 벗어버리기로 했다. 내용인즉 이제부터 6살 먹은 꼬마도 성인이 동반하는 경우 12살 이상 관람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거. 12살 어린이도 성인을 동반한 경우 16살 이상 관람가 영화들을 볼 수 있고. 이렇게 성인 동반 여부에 따라 자기 나이를 뛰어넘는 “부담스런” 영화들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상을 떨친 이번의 법 개정은 여러 면에서 그 책임 회피의 효율성이 대단하다. 여기서 성인의 동반이란 결국 그 꼬마들의 부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에게 의 섹스신, <반지의 제왕>의 살인신을 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책임은 더이상 정부가 아닌, 부모에게 돌아간다. 이제부터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영화들을 감상할 정도로 성숙했는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며, 그 판단의 실수로 인해 빚어지는 책임 또한 걸머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들은 이런 결정에서 홀로 고독한 판단을 내리도록 방치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독일 영화법 관련자들은 관람가 연령 딱지의 전권을 포기하는 대신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할 부모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고 적극적인 계몽(?)운동에 치중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몇살 이상 관람가라는 딱지는 이 나이만큼 먹지 못한 관객에게 관람 자제를 종용하기는커녕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사과를 오매불망했듯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촉매역할만 했을 뿐이라는 게 이번 독일 영화법 개정의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 정부는 아예 솔직히 인정했다. 정부가 그럴싸한 허울만으로 당신들의 자녀를 보호해줄 능력은 없소, 그러니 아예 직접 책임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