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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4]

감독들이 말하는 배우 박영규

"억울하게 당하는 연기, 당대 최고다"

김병욱 | <순풍산부인과> <똑바로 살아라> PD

<순풍산부인과> 첫 녹화를 하던 날을 기억한다. <순풍산부인과> 전에 박 선배를 알던 사이가 아니라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첫 녹화를 하면서 느낌이 팍 오더라. 혼자 마늘을 까면서 아내인 미선이가 “왜 그러고 있냐”고 말하면 “장모님이 까래잖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장인, 장모 앞에선 끽 소리도 못하면서 미선이한테는 큰소리치는 건데 코미디를 잘 아는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게 나왔으니까. 처음에 미달이 아빠를 생각한 건 시트콤의 인물이 대부분 착한 사람뿐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고 느낌이 들어서였다. 처음부터 치사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불쌍한 사람, 삶에 찌든 사람을 그리려 했는데 하면서 점점 발전한 캐릭터다. 그건 박 선배가 그런 연기를 무척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배우의 내재적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 사소한 일로 집요하게 다툴 때, 뭔가 억울하게 당하는 연기를 할 때 박 선배를 능가할 연기자는 없는 거 같다. 그런 장면 찍을 때는 연출하는 내가 속이 시원해진다. 국내 배우 중 클래식한 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많지만 시트콤에서 박 선배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똑바로 살아라>에 다시 캐스팅한 것도 안전장치라는 측면이 있었다. 연기의 안정감을 믿으니까. <똑바로 살아라>에서 캐릭터 변신을 도와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원래 <똑바로 살아라>의 영규는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랑 달리 예전에 잘살았던 인물로 설정했다. 예전에 잘살던 영규와 예전에 못살던 노주현이 계급이 뒤바뀌어 한지붕 아래 사는 모습을 그리려 했는데 지금은 잘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

장항준 | <라이터를 켜라> 감독

박 선배는 그야말로 코미디도 되고 드라마도 되는 배우다. 연기 폭이 광범위하다. <라이터를 켜라>에 박 선배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웠다. 박용갑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의 축이 돼야 하는데 그런 중심을 잡아줄 배우는 박 선배, 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미달이 아빠 연기로 코미디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라이터를 켜라>를 찍을 때는 코미디를 많이 자제했다. 코미디를 눌러달라는 주문을 했을 때 박 선배는 흔쾌히 동의했고 현장에서 한참 까마득한 후배인 나를 최대한 존중해줬다. 그리고 박 선배는 현장을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다. 조용한 걸 못 견디는 분, 어쨌든 박 선배만 나타나면 현장이 즐거워진다. 시사회 끝나고 나서 좀더 웃겼어야 하는데, 라고 아쉬워하긴 했지만 촬영 때는 철저히 감독을 이해하고 존중해줬다. 박 선배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갖고 있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코미디 배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연기파 배우라는 점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가 있어, 현장이 즐겁다"

이민용 | <보리울의 여름> 감독

우남 스님 역은 이른바 레벨이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공존하는 캐릭터였다. 위엄있고 내공이 있어 보이고 고결한 부분은 연기할 만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것과 더불어 삼류 스님의 분위기를 연기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 두 가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릴 수 있는 연기자가 누구일까, 했을 때 박 선배가 시나리오를 읽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처음 만나는 날 확인한 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나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캐릭터를 계산해서 수위를 조절하며 톤을 잡아가는데, 정말 캐스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에서 다소 오버하는 모습을 보일까, 염려도 했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다. 현장에서 그분의 예술관, 연기관, 인생관을 들으면서 많이 배웠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후배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 분이다. 현장 분위기를 이끄는 면에서도 모범적이다. 스탭과 마을 주민을 위해 노래 불러주고 모두 재미있게 일하도록 도와줬다. 덕분에 현장이 즐거웠고, 현장이 즐거우면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게 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