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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박영규 스토리 [1]

그 남자 치사하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보리울의 여름>까지 비굴하고 쪼잔한 욕망의 대변자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로 매일 브라운관에서 만났던 배우 박영규, 그가 이번에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주인공 우남 스님으로 돌아왔다. 10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라 관객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초조해하는 그를 개봉 2주 전에 만났다.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던 미달이 아빠로 시작해 우남 스님까지, 그가 살아온 궤적에서 우리가 그의 코미디 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짚어본다. - 편집자

“어머, 미달이 아빠야, 얘.” “어디 어디?” 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박영규(50)씨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미달이 아빠’라고 불렀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가 낳은 숱한 인기 캐릭터 가운데도 가장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인물, 미달이 아빠. 장인 눈치 보기, 남의 집 냉장고 뒤지기, 밥값 안 내고 도망가기, 사소한 일에 토라지기,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기, 눈앞의 이익에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기 등 일상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든 치사함이 똘똘 뭉쳐 붙여진 이름, 미달이 아빠.

<순풍산부인과>의 전설로 내려오는 그의 저서 <돈 안 쓰고 술과 밥을 즐기는 101가지 방법>은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앞서의 100가지 사례에서 나는 돈 안 내고 밥과 술을 즐기는 모든 예를 열거하였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의외의 상황에 부딪히는 일이 있다. 101번째 사례는 그런 나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그 101번째 사례는 화장실 가기, 구두끈 묶기, 양말에 지갑 숨기기 등 다른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는 최악의 순간, 벌어진다. “이렇게 끝까지 몰리기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제군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이어 박영규의 삼십육계 줄행랑 장면에 깔리는 내레이션. “그날 난 30년 친구 세 사람을 잃었지만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곧 개봉할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계기로 만났지만, 미달이 아빠 이야기를 빼고 배우 박영규를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요즘 방영되고 있는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의 영규가 다시 미달이 아빠를 부활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유소 습격사건> <휴머니스트> <라이터를 켜라>로 이어진 영화 출연작에서도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는 살아 있다. “왜 하필 여기냐”고 울먹이며 주유소 물건이 하나라도 부서질까, 노래를 부르고 ‘대가리 박아’를 하는 저 불쌍한 중년 사내를 보라. “난 민주항쟁 시절에,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버티던 민주투사야…. 내가 니까짓 놈한테 굴복할 거 같으냐?”며 큰소리치다 “이, 이봐, 철곤이, 두, 두배루 주마. 어서 기차 세워”라고 애걸하는 국회의원은 또 어떤가. 박영규는 미달이 아빠를 만나 만들어낸 벌거벗은 인간의 초상을 이렇게 말한다.

미달이 아빠? 본능에 충실할 뿐

“사람 피부를 바늘로 찌르면 아프다구. 바늘로 찌르는 사람은 싫잖아. 남이 나를 아프게 하면 다 적이야. 부모형제 다 필요없어. 아무리 부모라도 자꾸 바늘로 찔러봐, 자식이 가만 있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에고이스트야.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한다고. 남이 날 괴롭히면 못 견뎌. 어떤 사람도. 먹는 거, 좋은 옷 입는 거, 사람이 오감이 왜 있어? 미각이 왜 있어? 맛을 느끼라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라고 있는 거잖아. 창자가 왜 있어? 배고프면 못 견딘다구. 돈다구. 사람도 죽여버린다구. 마찬가지라구. 먹는 거, 입는 거, 인간은 다 자기 몸에서 요구한다고. 미달이 아빠는 인간의 몸이 요구하는 본능을 아주 절묘한 방법으로 보여준단 말이지.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해봤다고. 돈 안 내려고 그러고. 미달이 아빠가 왜 사랑을 받았냐 하면 본능적으로 남을 해치는 방법이 아니야. 남을 해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해 자잘한 시비를 거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자식, 마누라 건드리면 그럼 죽잖아. 본능을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지. 그게 아름다움이지. 나쁜 짓을 하면서 그런 게 아니라 잔머리 굴리면서,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어려운 살림에 돈 안 쓰려고 그러는 거 얼마나 아름다워. 어떻게 미달이 잘 가르칠까 걱정하고. 아주 보편타당한 인간이지. 본성에 거짓말하지 않는 소유자. 그래서 사랑받지 않았나 싶어요.”

현실의 박영규 또한 미달이 아빠를 사랑한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 역이 연기생활에 어떤 전환점이 됐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매우, 소 머치(So Much).” 박영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십분 이해가 가는 말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3년 홀로 서울에 올라와 이듬해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수가 되는 꿈도 꿨지만 당시 대전에서 “신성일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곧잘 들었기에 배우가 되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배우가 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그는 팬들에 둘러싸인 제2의 신성일이 아니라 춥고 배고픈 연극배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연극연출가 오태석씨의 가르침을 받으며 10년간 연극무대를 전전하던 시절, 그는 생계를 위해 서적외판원도 했다. “책 팔러 다니면서 절친한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책을 안 사는 거야. 그렇게 매달리는 데 끝까지 안 사. 이 친구가. 지금 만나면 그런다구. 너 그때 책 안 산 거 후회하지? 그때 샀으면 내가 너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할 텐데. 너 후회하지?”

그렇게 아픈 기억은 29살 때 폐결핵에 걸리면서 생사의 고비를 오가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아직 변변한 일자리도 찾지 못한 막내아들이 “살 희망이 별로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낙담하며 “그냥 죽는 게 더 편하겠어”라고 말할 때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몸에 좋다는 음식은 뭐든 먹였다. 그리하여 극적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한 아들은 85년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방영된 <초록빛 모자>로 처음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췄고 이후 영화와 TV를 오가며 연기자 생활을 계속했다. 드라마 <내일 잊으리>처럼 인기를 끈 작품도 있었지만 <별리> <레테의 연가> <애란> <서울무지개> <내일은 비> <로맨스 황제> 등 90년대 초반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잘생긴 외모만 앞세우는 비슷한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찾아온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는 그에게 엄청난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박영규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연극배우 시절 오태석씨에게 배운 코미디 감각을 되새기며 스튜디오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