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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박혜명 사진 조석환 2003-04-25

"내 영화는 음지에서 자란 나를 닮았다"

<빵과 우유>의 원신연 감독

철도원 노동자의 하루를 그린 <빵과 우유>의 원신연(35)씨는 <피아노맨> <깊은 슬픔> <카라> 등의 상업영화에서 무술감독으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던 그가 독립단편 연출로 진로를 바꾼 것은 “액션을 위한 액션만 하는 것이 싫어”졌기 때문. 99년부터 매년 한편씩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전작들 가운데 부모의 학대를 받는 여고생의 이야기 <세탁기>(2001)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어머니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 <자장가>(2002)를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각각 소개한 바 있다. 현재 한국독립영화협회 극분과 회원으로 활동 중인 원신연씨는 훗날 “사람 냄새 나는 액션영화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에 부천영화제 가는 길에 노동자 한 사람을 우연히 봤는데, 한쪽 어깨에 장비가 가득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혼자 철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우리 아버지와 연결되더라. 그 길로 영화제를 포기하고 잔디밭에 앉아 한번에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까 봤던 그 모습의 철도청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앉아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제목을 지었다.

-<세탁기> <자장가> <빵과 우유>가 가진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내 삶에서 비롯된 얘기들이다. <세탁기>는 부모에게 학대받던 여고생이 숨을 곳을 찾다가 세탁기 속에 들어가고 그 사실을 모르는 엄마가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아이가 그 안에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자장가>에선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로부터 “날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뒤 탈옥해 누나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다. 결국 누나에게 사과인사도 못한 채 현장에서 총살당한다. 내 생각에 난 음지에서 자랐고, 내 영화들은 나를 많이 닮았다.

-<빵과 우유>는 그래도 본인이 말하길 ‘희망’이 주제라고 했다.

=사고를 위장해 보험금을 타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목숨도 건졌다. 나사라도 쥘 수 있는 손이 있으니, 회사에선 잘렸지만 다시 시작할 여지도 있는 거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빵과 우유를 먹는 건, 본능이면서 동시에 살아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기차가 달려든다든지 낙석을 깨부순다든지, 촬영이 만만찮을 장면이 많다.

=사실 걱정이 된다. 철도청 협조를 얻어서 기차 대여라도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태백선같이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노선을 찾아, 기차 지나가는 시간 계산해가면서 찍어야 할 것 같다. 낙석은, 소품쪽 친구 말로 제작비만 200만원이라는데, 친구니까 어떻게 잘 말해서 반 이상 깎아볼까 한다. 그래도 네편 작업하는 동안 나름대로 예산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다. 시나리오 회의는 학교 운동장에서 자판기 커피 갖다놓고 한다든지 하는.

-극분과 모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정기모임이 한달에 한번씩 있다. 독립영화인들의 권익보호와 자유로운 활동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상호협력의 장이라고 보면 된다. 연대의식이 강하다. 막말로, 서로 등 맞대고 비비면서 ‘우리 따뜻하지?’ 이러는 데다.

-장편 계획도 있나.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무리한 욕심일런지 몰라도 1년에 한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온 것 같다. 장·단편 구분은 없고 상업영화를 할 생각도 있다. 충무로 PD나 제작자들을 만나보면 그 사람들의 사고틀은 이미 짜여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 더하기 1은 반드시 2다. 난 독립영화만 해왔기 때문에 그 틀에 맞추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축은 결국 나 자신이다. 자유롭게, 지금까지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내가 자유로우면 관객도 자유롭게 받아들일 것 같다.

<빵과 우유>는 어떤 영화?

죽어야 사는 남자

며칠 전 해직 통보서를 받은 철도청 소속의 선로보수 노동자는 오늘도 평소처럼, 늘 지급되는 빵과 우유를 가방에 넣고 마지막 근무에 나선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어느 기찻길에서, 그는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차 사고를 위장,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세운다. 뜨거운 철길 위에 누워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그러나, 아침부터 이유없이 계속된 설사가 하필 그 순간 터지는 바람에 열차 한대를 어이없게 놓치고 만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로 하고 다시 드러눕는 그. 바로 그 때, 커다란 낙석 하나가 철길 위로 떨어진다. 비상전화쪽으로 달려가보지만 전화함은 비어 있다. 이제 곧 다음 기차가 통과할 시간이다. 결국 위장 사고로 보험금을 타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도리어 직무유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낙석을 처리해야 할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