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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1]
김현정 2003-05-02

“<매트릭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원화평은 홍콩액션이 지금 같은 파워를 가지게 된 까닭을 묻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매트릭스>를 향한 찬사와 함께 자신이 안무한 액션을 뿌듯해하는 장인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오우삼과 서극, 임영동, 우인태가 할리우드에 나섰지만, 그중 어떤 감독도 카메라 뒤에 묻힌 한 무술감독이 했던 것처럼 동양의 정서와 영혼을 살려내진 못했다. 원화평은 세계 대부분 육지를 지배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전제 자체를 뒤집었다. 사스(SARS)가 첫 번째 절정에 달한 홍콩, “괴질이 두렵긴 하지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원화평을 만나 <필름메이커>로부터 “영화적이고 초현실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꿈의 단계라고 말해야 할” 액션을 창조했다는 찬사를 받은 무술감독의 목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세기의 액션영화는 원화평과 그 동료들이 변방에서 지켜온 홍콩 액션영화와 함께 막 숨쉬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 편집자

홍콩 = 김현정 parady@hani.co.kr

2001년 <철마류>가 미국에서 개봉할 때 쿠엔틴 타란티노는 홍콩에 있던 원화평을 대신해 극장에 섰다. “나는 홍콩 쿵후영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원화평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소개를 시작한 타란티노는 “벌써 6년 전 미라맥스에 원화평을 추천했다. 이연걸과 견자단을 캐스팅하고 원화평에게 연출을 맡기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트릭스> <와호장룡>은 할리우드에 무술감독으로만 알려졌던 원화평이 스스로 연출한 영화까지 극장에서 개봉하도록 만들었다. 중력에 붙들리지 않고 허공에 선을 긋는 원화평의 액션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었고, <철마류>는 비영어권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박스오피스 6위로 데뷔했다. 한때 리뷰 뒤에 붙는 크레딧에서 무술감독이 누구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던 많은 해외언론은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명인(Master), 전설적인(Legendary)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경의를 바치고 있다.

“나는 배우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홍콩 영화인은 “촬영현장에서 서극과 대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무술감독은 원화평뿐이다”라고 말했다. 서극과 원화평은 <황비홍>으로 배우의 육체가 특수효과보다 경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중국 신화와 무협을 결정처럼 응고시킨 <촉산전>을 위해 힘을 모았던 파트너다. 감독이 무술감독에게 일방적으로 주문만 떨어뜨리는 홍콩에서, 무협을 좋아하는 여섯살 차이 동년배의 두 남자는 쿵후가 그려내는 영상 앞에 시선을 일치시켜왔다. 그러나 그 상대가 원화평이 아니었다면, 서극이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무술감독과 의논할 까닭이 있었을까? <와호장룡>의 리안 감독마저 지루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당신 뜻대로 하세요, 마스터”라고 고개를 숙였다는 원화평은, 무술감독이 머물러야 할 영역을 지키면서도 그 좁은 마당을 훌쩍 뛰어넘어 액션을 안무하는 장인이다. 그가 토대를 다지고 구조를 쌓아올린 액션은 검게 팬 <정무문>의 독묻은 손바닥 자국처럼, 영화에 원화평이라는 이름을 또렷이 새긴다.

옛이야기를 할 때마다 버릇처럼 “삼십년도 전에…”라고 운을 떼는 원화평은 이소룡이 할리우드를 침범했던 1970년대 초반 엔드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홍콩 최초의 무술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아버지 원소전은 10남매의 맏아들이었던 원화평과 그 남동생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쿵후를 가르쳤고, 아이들이 십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일하는 영화현장마다 무조건” 데리고 다녔다. 스턴트맨과 엑스트라 등을 거친 원화평은 신인감독이었던 오사원의 1971년작 <풍광살수>에 액션 디렉터로 참여해 독자적인 경력에 머릿돌을 놓았다. 그는 몇년 동안 오사원과 <탕구탄> <아호강룡> <맹호하산> 등을 함께하는 틈틈이 <석파천경> 등에선 동생 원상인과 공동으로 액션을 만들기도 했다. 원화평은 “예전에 나는 내 영화가 관객과 제작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영화가 성공하리란 확신만 있다면, 제작자한테 내 재산 마지막 한푼까지 담보로 잡힐 마음도 먹었겠지만, 이 산업은 매우 불투명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제작했으면 좋았을 영화가 1978년 직접 연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취권>이었다.

<취권>은 원화평과 그 가족, 친구들이 사이좋게 만든 영화였다. 돈독한 파트너 오사원이 제작과 각본을 맡았고, 아버지 원소전은 젊은 황비홍에게 취권을 가르치는 사부로 출연했다. 동생 원신의와 원진위, 원화평 그 자신이 무술감독으로 팀을 짜서 베이징오페라로 단련된, 이소룡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했던 성룡에게 코미디와 쿵후가 결합된 독특한 액션을 구사하도록 했다. 골격이 예리한 이소룡보다 부담없게 생긴 성룡은 무뚝뚝한 무협영화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르를 찾았고, 주변 사물을 이용한 발차기로 날아오르면서 두 번째 용(龍)으로 떠올랐다. “영화는 한편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무술감독은 캐릭터와 스토리와 장면에 맞는 액션을 생각해야 한다.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원화평은 배우에 따라서 다른 힘을 실은 다른 동작을 창조하곤 한다. 오우삼이 주윤발과 니콜라스 케이지를 1초당 각각 다른 프레임 수로 잡아내는 것처럼, 원화평은 성룡에겐 장르를 무시한 코믹 쿵후를, 파워있는 로렌스 피시번에겐 강한 주먹을,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캐리 앤 모스에겐 여섯달 동안 배워야했던 빠른 ‘스콜피온 킥’을 부여한다. 원화평이 “나는 배우를 가리지 않는다. 쿵후를 전혀 모르는 배우라도 훈련만 하면 액션배우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데는 이런 유연성이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원화평은 <매트릭스> 촬영 시작 전 받은 척추수술 후유증 때문에 무리한 발차기를 할 수 없었던 키아누 리브스를 위해 손동작 위주지만 남들보다 몸사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 가라테 도장장면을 지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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