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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현장 스케치 [2]

동서고금 막론한 욕망의 모습

“다시 현대물을 한다면 펄펄 날 것 같아요.” 이재용 감독은 사극 연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움직임의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꼼꼼함과 섬세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연배우들에게는 대사의 톤까지, 단역에게는 화면에 들고나는 위치와 타이밍을 정확히 짚어준다.

“사람 사는 거나 인간의 욕망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내 식으로 펼쳐볼까 하는 게 관건이지. 양반집 깊숙한 곳에서 춘화를 돌려보고 또 조씨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춘화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 ㅇ양 비디오 사건과 다를 게 없고, 당시에 집 한채 값이라는 가채에 사대부 아녀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이탈리아 가구를 갖고 싶어하는 지금의 욕망과 다를 게 있겠어요?”

감독뿐만이 아니다. 전도연과 배용준은 이구동성으로 <발몽>이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감독 로저 컴블, 1998)보다 <위험한 관계>가 확실히 인상적이라며 영화 <스캔들…>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세실(우마 서먼)의 엄마가 투르벨 부인(미셸 파이퍼)에게 자꾸 경고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작업’을 방해하자 발몽 자작(존 말코비치)은 그 대가로 세실의 처녀성을 가져간다. 메르티유 백작부인(글렌 클로즈)은 처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세실에게 남편과 맘을 준 연인과 몸을 준 남자를 동시에 갖는 게 여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자유라고 조언하며 발몽을 거드는데 그건 일말의 진심이기도 하다. 죄책감이 사라진 세실에게 발몽이 ‘난 한때 네 엄마의 정부이기도 했어’라고 말해주어도 세실은 깔깔거리며 재밌어한다.

<위험한 관계>의 이야기 줄기를 거의 따온 <스캔들…>이니만큼 세실의 조선시대 버전 소옥과 소옥어미도 모두 조원에게 ‘정복’당한다. 물론 조씨부인의 지원사격이 컸다. 조씨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메르티유 백작부인이 정리해주는 ‘인생관’을 참고하면 좋겠다. “처음 사교계에 들어와서 그저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듣고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숨기려는 걸 듣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전문가가 됐지. 도덕가에게서는 외모를, 철학가에게서는 생각하는 법을, 소설가에게서는 불필요한 게 뭔가를 배웠어. 그걸 합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어.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남자들을 지배하고 여자들에게 복수하는 거지.”

발몽과 메르티유처럼 조원과 조씨부인도 같은 부류의 인간이다. 사랑 그 자체보다는 권력처럼 위계짓는 사랑 게임을 즐기며 운명적인 사랑에 심취한 인간들을 조롱한다. 이재용 감독도 사랑에 얼마간 냉소적이다. <정사>에서 “결혼에 희망을 갖지 마라. 열정만 갖고 사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던 남편의 말에 동감하던 이 감독은 ‘솔 메이트’(영혼의 짝) 따위의 대사를 편집에서 지워버렸다. <순애보>에 다시 등장한 우인은 아야와 알래스카에서 커플이 되지만 그는 사실상 거세된 남자다. <스캔들…>에선 발정난 조원이 뒤늦게 ‘회개’를 하겠지만 운명적 멜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SF영화 만드는 상상력으로

낯선 곳에서 이야기를 끌어온 영화답게 <스캔들…>은 공간과 디테일에 대한 상상력이 ‘SF적’이다. 이것은 <스캔들…>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아온 기존 사극과 달라지리라고 예상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치질을 어떻게 했을까까지 고증하려 했으나 남아 있는 게 워낙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먼저 상상을 해보면 대체로 맞아들어갔다고 한다. 민속촌에 가면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의 집 모양을 개괄해놓았지만 설마 사람들이 그렇게 표준적으로 살았을까 싶었다. 마침 문을 열면 트인 마당이 아니라 벽부터 다가서는 이언적의 ‘은밀한’ 집을 보고 무릎을 쳤다. 내당에 연못을 만들어놓기도 했겠지 싶어 세트를 만드려 하니 ‘그런 집’은 없었다는 반발에 부딪쳤다가 뒤에 ‘그런 집’이 있었다는 걸 찾아냈고, 예절법을 연구하다 식사 때 서양의 냅킨 같은 걸 썼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 서구식으로 방을 꾸미듯 그때는 방을 중국식으로 치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으로 밀어붙인 것도 있다. 상상력이 이런 식으로 자꾸 작동하니 ‘이건 SF영화다’라는 레토릭도 틀린 것만은 아닌 셈이다.

“당시에 군자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 제너럴리스트를 추구했어요. 스스로 약을 지어 먹을 줄 알고, 운수도 볼 줄 알고, 자기 집은 자기 식대로 짓고 살았다는 거죠. 이걸 알고 나니까 사대부의 일상에 집중하는 데 많이 자유로워지더군요.”

공간에 대한 야심을 가진 사극이라면 미술비의 비중이 높을 것은 불문가지. 순제작비 45억원 중 미술, 의상 등에 들이는 돈이 20억원에 가깝다. 화려한 실내 미장센을 연출하기에 고충이 크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좌식 문화에 카메라를 다양하게 들이대기가 생각보다 갑갑하더라는 것이다. 조금만 움직이면 틀어지는 한복이나 머리, 수염 등도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는다. 조원의 잘 다듬어진 수염은 ‘리얼리티’를 위해 한올씩 일일이 붙였다.

그래도 68회차 촬영 중에 43회차를 넘기면서 중요 대목은 거의 다 찍었기 때문인지 야외촬영에선 느긋하게 즐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요즘 영화계의 한 경향이라 할 여성 스탭들의 파워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분장, 의상은 물론이고 프로듀서, 제작부장, 조명 퍼스트, 붐 마이크 등이 모두 여성이다.

“<순애보>처럼 이것저것 살짝살짝 숨겨놓는 재미는커녕 이야기 전달에만도 힘이 많이 들어 한눈 팔 새 없을 지경”이라는 엄살은 이 영화가 매우 촘촘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에로틱함과 멜로, 유머까지 그 어느 때보다 ‘톤’이 다양한 이재용 감독의 신작이 얼마나 ‘비싼’ 결과를 낳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우아하고 세련된 사극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스탭들이 묵는 안동 시내의 모텔은 여느 도시처럼 술집들로 포위돼 있었다. 밤늦게까지 붙잡아놓았던 감독이 돌아간 뒤 텔레비전을 켜자 한 채널에서 비디오용 에로영화가 줄창 쏟아진다. 이래저래 현실은 ‘싸구려’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치밀어오른다. “성(性)스러우면서도 성(聖)스러움이 깃든” 영화는 그래서 자꾸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편집 이다혜

배용준, 전도연 인터뷰 “용준씨, 러브신 직전까지 운동하더라”

배용준이 맡은 조원은 시, 서, 화에 능하지만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 여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조선 최고의 바람둥이다. 재치있는 유머와 강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할 텐데 브라운관에서 굳어진 이미지는 호탕한 남성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안경을 벗고 8kg을 감량한 얼굴은 날이 서 있다. 공식 인터뷰가 아닌 사담을 나눌수록 ‘터프’하다는 느낌이 더해진다. 배용준은 온갖 스포츠를 즐기고 또 잘한다. 그 덕에 말에서 떨어진다든지 부채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장면에선 스턴트맨보다 훨씬 잘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 최고의 정절녀 숙부인 역의 전도연은 잠시드라마쪽으로 나섰다가 쪽진 머리로 돌아왔다. 한담을 나누던 이유진 프로듀서는 “슛 들어갑니다”란 소리가 나자 “도연이는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어”라며 연기에 대한 믿음을 표시했다.

러브신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지. 배용준 >> 한복이 입고 다니기에 좀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가끔 다 벗고 그랬어요. (웃음)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전 처음이잖아요. 찍고 났더니 전도연씨가 매니저랑 뭘 막 상의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건 너무 야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고 뭐가 많이 나오진 않아요. 전도연 >> 저도 잘 모르고 찍었어요. (웃음) 그런데 용준씨는 그거 찍기 전까지도 분장실에 아령을 갖고 와서 운동을 하더라고요.

유머도 꽤 담겨 있다고 하던데. 전도연 >> 전혀 코믹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본 리딩에서 웃기는 대목이 많은 거예요. 뭐랄까 너무 진지하니까 오히려 웃기는. 배용준 >> 그런 점에서 기대되는 장면이 몇개 있는데, 아직 찍지 않아서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어요.

배용준씨는 첫 영화인데다 사극이어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배용준 >> 드라마는 길게 나누어 가고 반응도 바로 돌아오니까 큰 긴장감이 없었는데 영화는 액기스만 가니까, 연기의 호흡이 빠르니까 좀더 죽기살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맘 같아서는 다시 다 찍자고 하고 싶어요. 현대극 같지 않고 대사도 좀 힘들고, 상투 때문에 머리에 피멍이 들기도 했어요. 한복 입고 살다보니 옛날 양반들은 불편해서라도 소식을 했을 것 같아요. 촬영이 힘들어서 빠진 것도 있지만 체중 감량은 잘한 것 같아요.

전도연씨도 사극은 처음 아닌가요? 촬영이 60% 정도 진행됐는데 연기하기가 어떤지. 전도연 >> 벌써 그렇게 됐나. 장르의 변신일지는 몰라도 연기의 변신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고지순한 캐릭터라는 표현 방식만 달랐지 연기는 결국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평상시 이미지가 워낙 발랄하긴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숙부인의 조용한 성격이 저랑 많이 닮았어요. (웃음) 조씨부인(이미숙) 캐릭터가 워낙 힘있게 보이는데 저는 숙부인에게 또 다른 힘을 주고 싶어요.

자신의 순정이 사랑 게임의 대상이 된다는 게 현실이라면. 전도연 >> 글쎄. 바람둥이라도 그때그때 진심이 아닌 건 아니니까…, 넘어갔을 것 같아요. 여기선 결국 조원의 진심이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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