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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야비한 그 남자 죽어도 싸다?

적군파에 살해된 슐라이어 벤츠 사장 다룬 다큐 <독일 이야기>, 중립적 태도 아쉬워

8월20일, 독일 <제1공영방송>(ARD)을 통해 25년이나 지각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한스-마틴 슐라이어. 1977년 10월 독일 테러집단 적군파에 납치, 살해당한 다임러-벤츠 사장이자 독일 전경련 회장이다. 원고는 영화정책 연구로 유명한 아돌프-그림(Grimme) 연구소장을 역임한 루츠 하흐마이어로, 뒤늦게 ‘미디어’ 법정을 열어 슐라이어를 불러냈다. 그리고 검사, 판사, 사형집행인의 1인3역을 맡아 종횡무진한다. ‘영화’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1970년대 독일 기득권층을 불안에 떨게 만들던 테러집단 적군파(RAF)의 표현을 빌리자면, 슐라이어는 한마디로 ‘공공의 적’이었다. 그는 68세대가 진저리쳤던 독일 기성세대의 모든 해악을 한몸에 담고 있었다. 열성 ‘히틀러 소년대원’을 거쳐 나치에 입당했으며, SS유격대에도 가담했다. 2차대전 중에는 체코로 건너가 유대인의 재산을 강탈, 나치 기업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종전 뒤 3년간 포로생활을 했던 슐라이어는 위증과 오리발 작전으로 1948년 재판정에서 “말단 당원에 불과했다”며 면죄부를 받았다.

나치전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슐라이어는 체코에서의 경험을 살려 막 출범한 독일연방공화국의 경제일군을 자처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의 한명으로 각광받았지만, 남미의 독재정권,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자들과의 음험한 거래도 마다하지 않았다. 슐라이어는 68세대에게 “썩은 냄새나는” 부모세대의 상징이었고, 테러집단 적군파에게는 도덕성을 상실한 지배체제의 화신으로 절대타도 대상이었다. 슐라이어를 납치한 적군파는 나치에 희생된 체코인 수십만명을 위한 보상금 명목으로 헬무트 슈미트 당시 총리에게 몸값을 요구했지만, 총리는 “적군파는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그들만의 정의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슐라이어의 머리에는 총이 발사됐다.

하흐마이어는 슐라이어를 재조명한 다큐에 <독일 이야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임으로써, 독일 현대사의 더러운 얼룩에 절어 있는 인물로 재현한다. 게다가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채 몇몇 짧은 인터뷰를 통해 적군파의 만행을 은근히 변호하는 사악함마저 드러낸다.

한스-마틴 슐라이어가 독일 현대사의 전형적 인물임은 사실이다. 당시 많은 독일인들이 그랬듯이 아리안 제1주의에 경도되었고, 나치에 협력해 명예와 부를 축적했다. 세상이 바뀌자 재빠른 변모로 출세가도에 편승했지만, 이런 행보는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감독이 은근히 암시하는 것처럼 적군파의 슐라이어 살해가 정당하다면, 전후 독일 부흥에 이바지했던 독일인 수백만명 역시 테러에 희생되어야 마땅했다는 식의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해명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사자를 재조명하는 결석재판식의 다큐일수록 감독의 객관적 시각과 중립적 태도가 절실하다. <독일 이야기>는 관객을 담론으로 이끌어내어 스스로 결론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다큐영화의 미덕이 아쉬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