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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1]

베니스, 거장들과 함께 소생의 길로

제6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현지보고

베니스=백은하 lucie@hani.co.kr

잠시 붙인 눈을 떴을 때, 베니스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가던 파리발 경비행기 속에서는 조용한 탄식들이 흘러나왔다. 몇백 마일 상공에서 바라본 물 위의 도시는 꼬불꼬불한 수로를 따라 도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인지 지면인지 모를 땅으로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검게 물든 바다 위에 띄워진 보트 위로 몸을 옮기니 잔잔해만 보이던 베니스의 파도가 얼굴을 때린다. 그러나 8월의 마지막 주, 베니스가 출렁거리는 것은 파도 때문만은 아니다.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와 휘장들, 기차역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까지, 사람으로 친다면 인생의 수많은 파고를 넘겨낸 이 환갑의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춘의 중심, 모리츠 위원장

올해로 예순개의 촛불을 밝힌 이 영화제는 파티 케이크를 자르는 첫 번째 영광을 강박증에 시달리는 유대계 뉴요커에게 돌렸다. 우디 앨런의 최근작 <애니싱 엘스>(Anything Else)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베니스는 “난 상 받는 일 따위엔 관심없다. 아니, 도대체 영화에 대해 서열을 매겨 상을 준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고 주장하며 영화제 나들이를 누구보다 꺼렸던 감독의 발걸음을 리도의 선착장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같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낭만적인 베니스의 풍광에 대한 수줍은 짝사랑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1997년 개막작으로 선정된 <해리 파괴하기> 등 6번이나 자신을 불러낸 이 영화제에 한번도 제때 인사를 건네지 못한 우디 앨런은 <헐리우드 엔딩>으로 지난해 칸을 찾은 이후 자신의 영화제 역사를 새로 쓰기로 작정한 것 같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코드46>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22년간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뒤 지난해 베니스로 적을 옮긴 집행위원장 모리츠 데 하델른은 칸, 베를린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라고 불리지만 여러모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 노파”에 비유되던 베니스의 회춘에 큰 공헌을 하며 올해 2년째를 맞았다. 그는 육중한 덩치에 걸맞게 헐리우드 오락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베니스로 불러오는 수완을 자랑하며 잔치를 잔치답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델른과 베니스 시장인 파올로 코스타의 끊이지 않는 언쟁은 계속해서 언론의 관심거리였다. 종합해변서비스시설인 ‘블루문’을 활용하려던 계획이 실패하는 등 넘쳐나는 의욕이 매번 시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었던 하델른은 “영화제를 흥하게 하고 싶다면 시는 더 많은 돈을 지원하라”, “지역의 보수적인 권력들 때문에 리도의 허술한 하부조직을 새롭게 개편하려던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고, 파올로 코스타 시장은 “하델른은 제발 투정 좀 집어치우라”며 응수하는 등 그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개막식날이 되어야 겨우 잠잠해졌다.

거장들의 파도타기

제60회 베니스영화제는 올해 유난히 부실한 라인업을 내놓았던 칸영화제로 가는 기차를 놓친 대규모 신작들을 넘겨받아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다. 경쟁부문인 ‘베네치아60’에는 <버터플라이 키스> <웰텀 투 사라예보> 로 이어지며 형식과 주제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마이클 윈터보텀의 미래극 <코드46>을 비롯해 일본 유명시리즈인 맹인 사무라이 ‘이치’의 삶을 그린 기타노 다케시의 첫 시대극 <자토이치>, <용문객잔>에 대한 향수 속에 사라져가는 낡은 영화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차이밍량의 <잘있어요, 용문객잔>(Goodbye, Dragon Inn), <아모레스 페로스>를 통해 인정받은 멕시코의 신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할리우드 데뷔작인 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뽀네뜨>로 알려진 프랑스 감독 자크 드와이옹은 <라자>(Raja)를 통해 소통불능의 상황에서 헤게모니의 전복을 맞게 되는 어린 모로코 소녀와 부유한 프랑스 남자의 사랑을 그려내고 <휴머니티>로 9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메가폰을 든 철학자” 브루노 뒤몽은 LA로 촬영여행을 떠난 한쌍의 남녀를 담은 (Twentynine Palms)로 또 한번의 충격을 안겨줄 태세다. 한편 좀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품으로 차별화한 또 다른 경쟁부문 ‘업스트림’에는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몬락 트랜지스터>의 타이 감독 펜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으로 데뷔한 부탄의 고승 키엔체 노르부의 신작 <여행자와 마법사> 등 18편의 경쟁작이 각축을 벌일 예정이다.

이런 고매하거나 새로운 영화들이 ‘영화제용’이라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진짜 주인공은 비경쟁으로 선보이는 화려한 영화들이다. 68년 5월혁명을 겪는 세 젊은이들의 사랑과 섹스를 통해 2003년판 ‘파리에서의 탱고’를 선보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드리머스>(Dreamers)는 남녀 주연배우의 정면 전라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영화제 전부터 많은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다. 또한 후반작업을 막 마치고 따끈따끈하게 공수되어올 조엘, 에단 코언 형제의 <참을 수 없는 잔인함>(Intolerable Cruelty)은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를 통해 궁합을 확인한 조지 클루니와 새롭게 합류한 캐서린 제타 존스 사이에 벌어질 ‘개와 고양이의 전쟁’을 베니스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할 예정이다. 또한 이미 3편의 단편을 통해 ‘커피와 담배’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짐 자무시의 장편 <커피와 담배>,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오마 샤리프의 5년 만의 복귀작인 따뜻한 우화 <이브라힘 아저씨>(Monsieur Ibrahim et les fleurs du Coran), 제임스 아이보리의 <프렌치 아메리칸>(Le divorce), 리들리 스콧의 <매치스틱맨> 등이 성냥불을 붙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베네치아60’에 선정되어 9월3일 언론에, 9월4일 밤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게 될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 대해 베니스의 유력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re della sera)는 “예고된 스캔들, 한국영화에 유전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에로틱 스캔들의 인자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란 새로운 제목을 달고 다시 숨을 쉰다”고 보도했다. <거짓말> <섬> <오아시스>로 이어지며 “엽기와 가학의 나라”로 인식되어진 한국에서 또 어떤 도발적인 영화를 들고 왔을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해 <오아시스>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문소리는 ‘올해 베니스를 찾는 유명인’이라는 일간지 기사에 할리우드 유명배우들과 나란히 사진이 실리면서 2년차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1]

▶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