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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조용한 가을 전쟁
김현정 2003-09-08

<라스트 사무라이> 등, 내년 아카데미를 노린 대작들 줄줄이 개봉

할리우드의 가을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지배하는 계절이 될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목록을 작성한 2003년 할리우드 가을영화는 길게는 몇십년 전부터 짧게는 몇년 전 제작된 영화들의 속편, 혹은 장중한 시대극들이 가장 주목받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셀 크로가 주연한 해양서사극 <마스터 앤 커맨더>(사진),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 <콜드 마운틴>, 3년째 팬들을 애태우게 하고 있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매트릭스3 레볼루션>, 놀랍게도 30년 만에 돌아온 리메이크영화 <텍사스 살인마>,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난 <라스트 사무라이> 등이 9월부터 12월까지 넉달을 메울 영화들이다. 할리우드 가을 시즌은 블록버스터가 없는 대신, 다음해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대작들이 진을 치는 계절. 무려 129편에 달하는 영화들이 이 명예의 전당을 두고 다투고 있다.

비교적 한산한 9월에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엘 마리아치> <데스페라도>에 이은 세 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3부작을 제작하는 동안, 친구 쿠엔틴 타란티노의 격려를 양분 삼아 결심을 굳혔다고. 조니 뎁이 연기하는 CIA 비밀요원이 마약 카르텔을 분쇄하기 위해 전설적인 기타 주자이자 암살자를 고용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경쟁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마이크 피기스가 할리우드로 돌아와 연출한 <콜드 크릭 매너>. 한 가족이 오래전 버려진 장원을 개척하면서 겪는 무서운 사건을 담은 영화로 샤론 스톤과 데니스 퀘이드가 주연을 맡았다.

가을의 한가운데라고 할 만한 10월은 수없이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들락거린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버티고 있는 달이다.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미스틱 리버>가 그의 역작. 살인사건을 계기로 재회한 세 친구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팀 로빈스와 숀 펜, 케빈 베이컨이 모였지만 2500만달러라는 저렴한 예산으로 제작됐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꼽은 가장 유력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이기도 하다. 코언 형제와 조지 클루니가 재회한 <참을 수 없는 잔인함>, 제인 캠피온과 멕 라이언이 살인사건에 연루된 여교수 이야기를 함께 엮어간 <인 더 컷>, 토비 후퍼의 전설적인 공포영화를 독일 출신 마커스 니스펠이 되살린 <텍사스 살인마>, 쿠엔틴 타란티노가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 킬러를 등장시킨 <킬 빌: 1부> 등이 10월의 우승컵을 두고 경주를 벌일 예정이다.

11월과 12월은 가장 장중한 시즌이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각각 한 자리씩 선점했기 때문이다. 11월은 <매트릭스> 시리즈 탓인지 디즈니랜드 놀이기구를 모델로 한 <헌티드 맨션>, 죽어가는 노인과 그 아들을 쫓아가는 팀 버튼의 <빅 피쉬> 외엔 눈에 띄는 영화가 없는 편. 러셀 크로가 나폴레옹 전쟁 시기, 거대한 전함을 이끌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마스터 앤 커맨더>가 가장 강력한 경쟁작이다. 그러나 12월에는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러브로망 <콜드 마운틴>과 빌리 밥 손튼이 결코 잊혀지지 않을 요새를 수비하는 <알라모>, 톰 크루즈가 일본 사무라이 문화에 매혹돼 갑옷과 일본도를 착용하는 서사극 <라스트 사무라이> 등이 진을 치고 있다. 여름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할리우드의 휴전 협정은 멀기만 한 것 같다.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