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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감독니임, 그 장면 왜 자르셨어요?
2003-10-02

근사하게 영화에 관한 기억을 풀어놓으면 좋을텐데 어쩐일인지 부산영화제하면 술먹은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올해 부산영화제를 이창동문화부장관이 찾는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문득 <조용한 가족>으로 부산을 찾은 98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밤만 되면 쌩쌩해져서 포장마차를 순회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해운대 바닷가에서 술을 먹고 있는 이창동감독과 이스트필름 직원들, <박하사탕> 연출부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모래사장에 앉아서 이창동감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궁금한 것이 한가지 떠올랐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일. “감독님, 아... 에... 진짜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뭐... 시비걸자는건 아니고요, 거... 참... 그러니까... <초록물고기>에서 그 시퀀스는 왜 홀라당 자르셨어요?” 사실 <초록물고기>에는 내 배역으로 보자면 매우 중요하고 하이라이트인 시퀀스가 있었는데 편집에서 그 장면이 날라간채 상영된 것이다. 물론 감독입장에서야 당연한 선택이었을테고, 결과적으로 영화전체를 보았을 때 잘한 일이었지만. 1년이 지난 그때, 뭐랄까? 섭섭함이었을까? 술기운이었을까? 문득 그 이유가 너무 너무 궁금해졌던 것이다. 허허 웃어넘기거나, 무시해도 상관없을 말이었을텐데 이창동감독은 그때 이 치기어린 배우에게 예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답을 풀어 놓았다. “강호씨... 그거 자른거는... 열 손가락 중에 한 손가락을 자른 것 같은 고통이 있었어요...” 그래, 감독의 마음도 그랬겠지, 내 마음만 그랬겠나, 수긍을 하면서도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너무 가슴이 아픈 나머지 이후로 기억이 상실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숙소 침대였다. 나중에 들으니 이창동감독이 손수 쓰러진 나를 업고 방에 누이고 가셨다고 한다.

술을 깨고 나니 참 가슴이 짠해졌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이 참 어렵구나.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냉정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투정부리는 배우들 달래는 일까지 해야하다니. 그 이후로 나는 한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이런일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선 매일 편집실에 출근을 하리라. 나의 편집실 출근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송강호/ 배우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