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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참을 수 없는 마케팅
2003-10-06

우디 앨런의 <애니싱 엘스> 고정팬 무시한 마케팅으로 최악의 흥행성적 올려

할리우드에서 저명한 감독들의 이름을 숨기는 이상한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근 미 전역에서 개봉된 우디 앨런이 연출한 <애니싱 엘스>(Anything Else)와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콜드 크릭 매너>(Cold Creek Manor)를 들 수 있다.

<애니싱 엘스>는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로 알려진 제이슨 빅스와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로맨틱코미디. 제작과 배급을 담당한 드림웍스는 <애니싱 엘스>를 기존 우디 앨런의 작품들처럼 마케팅을 하는 대신, 1천만달러를 투입해 <아메리칸 파이> 관객층(?)을 겨냥한 깜찍한 데이트용 영화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우디 앨런은 연출과 각본, 조연까지 맡았지만 극장과 TV예고편은 물론 포스터, 잡지 광고, TV용 리뷰클립에서조차 그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트레일러에서는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의 사랑 싸움만이 다뤄졌고, 포스터와 잡지 광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처럼 커다란 하트 안에 귀여운 표정을 한 크리스티나 리치가 웃음을 머금고 있다.

문제는 드림웍스가 ‘우디 앨런 영화’에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려 한 시도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는 것. 젊고 새로운 관객층에만 신경을 쓴 드림웍스가 지금까지 우디 앨런의 영화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격려해준 팬들을 외면한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관객은 이 영화를 흔한 코미디로 생각해 관람하지 않았고, 우디 앨런의 팬들은 이 영화가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 기존 우디 앨런의 작품들은 대체로 300여 극장에서 한정 상영돼왔지만 <애니싱 엘스>는 전국적으로 1033개 극장에서 개봉되는 파격적인 뒷받침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같은 전폭적인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주에는 흥행순위 12위를, 두 번째 주에는 18위를 기록했으며, 9월29일 현재까지 284만여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는 우디 앨런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악의 흥행성적이다.

드림웍스의 이번 마케팅 전략은 평론가들은 물론 영화팬들의 반감도 사고 있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자신의 칼럼에서 “<애니싱 엘스>의 극장 광고와 TV 트레일러를 보면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에게 모든 크레딧을 주고 있다”며 “우디 앨런의 작품을 <아메리칸 파이> 관객을 위해 포장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영화 전문 웹사이트인 ‘IMDB’(Internet Movie Data Base)와 ‘에인트 잇 쿨’(Ain’t It Cool.com)에도 이 작품이 우디 앨런의 것임을 뒤늦게 알고 격렬한 항의의 글을 올리는 영화팬들이 많다. 일부 우디 앨런 팬들은 “이 영화를 <아메리칸 파이> 관객에게 팔려고 한 드림웍스 사람들은 자폭해야 한다”, “이번 마케팅은 진짜 비열한 짓이다” 등의 메시지를 올렸다.

마이크 피기스의 <콜드 크릭 매너> 또한 광고에 피기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트레일러나 포스터, 광고물에서도 그의 이름은 볼 수 없으며, 오직 대형 포스터 가장자리에 ‘감독 마이크 피기스’라고만 명시돼 있다. 피기스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원 나잇 스탠드> <타임코드> 등으로 아트하우스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메인 스트림 안에서 만든 공포영화를 홍보하는 데는 그의 이름이 필요치 않았던 모양이다. 10월 말 할로윈 데이를 겨냥해 9월 말에 개봉된 공포영화 <콜드 크릭 매너>는 브에나비스타가 배급을 맡은 작품으로 주인공인 데니스 퀘이드와 샤론 스톤의 스타 파워, 그리고 으스스해 보이는 저택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총 2035개 극장에서 개봉됐으나, 1493만여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개봉 첫주에 간신히 5위에 턱걸이한 뒤 9월29일 현재 8위로 떨어졌다.

이같은 마케팅의 패착은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한 <참을 수 없는 사랑>(Intolerable Cruelty)으로도 이어지는 듯했으나, 제작진은 10월10일 개봉을 앞두고 이 작품을 감독한 코언 형제의 이름을 내세우며 ‘인디영화 팬’ 관리에 뒤늦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뉴욕=양지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