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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랑스감독 자크 드와이옹
2003-10-10

<뽀네트>로 잘 알려진 프랑스 감독 자크 드와이옹(59)이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가 부산 관객에게 선보이는 영화는 모로코의 젊은 여인과 프랑스의 나이 많은 부호의 사랑을 그린 <라자>(Raja)(사진). 지난 8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해 아마추어 배우 나자 베살렘에게 신인배우상(지난해에는 문소리가 <오아시스>로 수상)을 안겨주었다.

8일 저녁 부산에 도착한 드와이옹 감독은 9일 오후 8시 공식 상영에 이어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10일 서울로 떠나 이틀간 머문 뒤 뉴욕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8일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001년 부산에 초대를 받았지만 촬영에 매달리느라 오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기자와의 일문일답.

처음 한국을 찾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전세계에서 영화제가 너무 많이 열리기 때문에 모든 초대에 응할 수가 없다. 나도 영화제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못갈 때가 더 많다. 부산에는 제작자가 "재미있고 좋은 영화제니까 꼭 가보라"고 권유해 오게 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고 뒤편의 밤거리에는 활기가 넘쳐 감명을 받았다. 프랑스나 모로코의 거리에는 해가 지면 식당이나 술집 말고는 한산하고 어두컴컴하다.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나.

▲사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지식은 빵점이나 다름없다. 젊을 때는 하루에 두세 편씩 영화를 보는 마니아여서 일본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볼 틈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돈은 적고 시간은 짧아 영화 만들기에도 바쁘다.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는데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한국과 함께 할리우드에 대항해 높은 자국영화 점유율을 유지하는 예외적인 나라로 꼽힌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실제로 크게 손뼉을 쳤다).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개똥같은'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쿼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질적으로 높은 영화가 상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영화시장이 세계화되면서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 다양성을 위해 뾰족한 대책이 없겠는가.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이나 음악, 영화 등에 대해 잘 가르치지 않는다.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된다면 젊은 세대들도 할리우드 영화에만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70년대까지는 거장의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지금 그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 모자라기보다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하나 문제로 꼽아야 할 것이 TV 프로그램이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배울 것도 없는 리얼리티쇼나 토크쇼가 프라임 타임을 채우고 있다.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지 않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금의 TV는 미국 대통령의 표현대로 `악의 축'이다.

<뽀네트>에서도 4살짜리 배우를 기용했듯이 이번에도 비전문배우들을 많이 출연시켰다. 아마추어를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을 전문연기자와 비전문연기자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인간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며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가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카메라 앞에서 수줍음만 타지 않는다면 비전문배우들이 훨씬 풍부한 표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전문배우들은 노하우를 갖고 있어 거짓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추어는 그런 테크닉을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섞어놓으면 전문배우들도 비전문배우의 연기를 보고 잊어버렸던 순수함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 대신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촬영하면 같은 장면을 20번 이상 찍어야 자연스런 연기를 뽑아낼 수 있다. 필름이 훨씬 많이 든다.

<라자>는 신분과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이 어떤 결말을 이루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은 의도는 무엇인가.

▲결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다 한 셈이다.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면 동화 같고 결별하는 것을 보여주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영화 속에서 두세 달이 지난 뒤 두 주인공이 다시 만난다면 서로 피할지 반갑게 맞을지 모르겠다.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모로코를 여러 차례 들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의 사랑을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랩음악의 가사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더빙하면 죽은 영화가 된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해본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돈많은 제작자를 내게 소개해준다면 한국말로 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부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