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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슈] 할리우드 따라잡기 혹은 콤플렉스
2004-03-04

1천만 관객시대의 도래는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비약되고 있다. 과도한 흥분과 섣부른 오해가 뒤섞여 마치 꿈속으로 비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냉정한 이성으로 이에 대한 평가를 하나둘 짚어가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가에 대한 관점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룬 영화적 성과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주 이슈 칼럼에서 조준형씨의 글을 읽고 한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의 글에 대한 전체적인 부정이 아니라 이 작품들을 평가하는 일부 관점에 대해서는 논의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적 성과를 평가할 때 할리우드영화와 비교해서 ‘우리 영화’의 규모와 수준이 여기까지 왔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가 스펙터클 분야에서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이런 관점과 논지에 동의하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 영화인과 관객의 뿌리깊은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해소해주었다는 얘기는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와 경쟁해서 살아남은 것은 규모와 스펙터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의 질적인 발전이 담보되었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규모와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지만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역시 뒤질 바 없다. 중요한 것은 규모와 스펙터클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와 장르의 선택 문제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영화의 흥행은 작품의 완성도와 마케팅의 성공 여부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한국영화의 시장과 경쟁력을 논할 때 할리우드영화와 수평적으로 단순비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이미 유치한 문제제기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와 전망을 논할 때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주류 트렌드’가 무엇이냐는 것과 한국영화의 전체 토대가 되어야 할 ‘스펙트럼의 다양성’에 대한 물음이다. 아무리 관객 1천만 시대라 해도 한국영화의 미래는 2003년을 기점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2003년은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장화, 홍련> <스캔들-남녀상열지사> <바람난 가족> <올드보이> 등의 작품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이른바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창출했고, 한국영화의 ‘주류 트렌드’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는 산업적인 의미에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못지않게 중요한 영화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것은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주류 트렌드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1천만 관객의 두 영화 역시 규모와 블록버스터의 성취가 아니라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토대에서 이룬 최고의 성과라고 봐야 한다. 다만 1천만이라는 수치의 상징적 의미는 영화적 성공을 넘어선 ‘문화 민족주의’의 틀로 분석한 남재일씨의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내세운 순도 100%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마케팅의 구호가 될지는 몰라도 한국영화의 자랑거리로 과대포장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영화의 성과들을 무시하는 자만일 수 있음을 꼭 말하고 싶다.

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