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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천만 시대 영화인들의 고언
2004-03-15

<실미도>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1천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관객 1천만 시대라는 것은 한국영화의 규모가 그만큼 커지고 관객층도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흥행영화의 스크린 독점으로 작은 영화를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터져나오고 있고 영화시장의 파이가 커진만큼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불만의 소리가 들린다. 관객 1천만 시대를 맞아 각 분야에서 일하는 영화인들이 한국영화계에 고언을 털어놓았다.

▶곽용수(36ㆍ독립영화전문배급사 인디스토리 대표)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은 반갑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버팀목은 다양성이다. 독립영화 상영 쿼터제를 도입하지는 않더라도 강제규 감독이 <송환>의 프린트 비용을 후원한 것처럼 주류와 비주류가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독립영화 전용관을 설립하고 방송에 독립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채윤희(영화홍보사 올댓시네마 대표ㆍ여성영화인모임 대표)

강제규 감독은 다른 감독과 다르게 독자 브랜드를 확실히 구축한 인물이다. 그 브랜드의 상품성이 관객에게 통한 것으로 본다. 욕심을 내자면 다른 영화도 골고루 잘됐으면 좋겠다. 2월달 한국영화 점유율이 82%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두 편에 집중된 것 아닌가. 여러 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다양한 영화가 공존해야 한다. 영화홍보사 입장에서는 어려워진 점도 있다. 전국관객 100만이나 200만이면 성공한 영화 축에 드는데 이제는 기대치들이 모두 높아져 시큰둥해 한다.

▶이문희(UIP 홍보실장)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평소 영화를 보지 않던 연령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제는 영화 관람이 젊은 층이 즐기는 레저가 아니라 모든 연령층이 향유하는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유행에만 휩쓸려 한두 영화에 몰리는 것보다 취향에 따라 골고루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 1천만 돌파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직배사 입장에서는 외화가 한국영화에 눌려 걱정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영화의 성장이 뿌듯하기도 하다.

▶하우종(47ㆍ허리우드극장 상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덕분에 관객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반면에 걱정도 앞선다.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져 웬만큼 만들지 못한 한국영화는 외면받을 것이다. 두 영화와 비슷한 수준의 영화가 계속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관객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작은 영화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도 우려된다. 극장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한두 영화가 절반 이상 독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양기환(43ㆍ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현재의 영화시장 구조는 국내 상업영화와 미국 직배영화의 대결구조다. 예술영화와 제3세계 영화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스크린쿼터 감경 대상에서 성수기 상영과 통합전산망 가입 조항을 폐지하는 대신 예술영화 상영에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을 확대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 금융자본만이 아니라 자본의 창구를 다양화해 예술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스크린쿼터는 보험적 성격이므로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고, 한번 축소한 것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철환(39.남.한국농아인협회 기획인권팀 팀장)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1천만 관객 중 장애인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은 몇몇 이벤트 행사나 1년에 한차례 열리는 장애인 영화제, 동호회 영화 관람 등 극히 제한적으로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영화진흥법이나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을 개정해 극장에 휠체어 통로나 장애인석, 장애인용 화장실 등 시설과 자막, 보청시스템 등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한 강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제도개선 외에도 영화인들이나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이 당연한 문화 향유의 권리라는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김우찬(26.남.<바람의 전설> 촬영팀)

<태극기 휘날리며>의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이런 적은 제작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느냐'며 찬사를 보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스태프의 한사람 입장에서 화가 난다. 정말 한국 같이 스태프 임금이 싼 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나? 현장의 스태프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며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1천만 시대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쓰쯔다 마끼(38.남.일본인.서울스코프 영화팀장)

감독과 스태프들을 비롯한 한국 영화인 모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한국 영화의 경사다. <태극기 휘날리며> 성공은 배급과 마케팅 그리고 영화 자체의 힘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경우다.

형제애와 멜로, 오해와 화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해외에서의 성적에 따라 한국영화가 아시아와 세계로 비약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처럼 해외에서도 출연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이정호(39.남.애니메이션 <오세암> 제작사 마고21 대표)

시장확대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면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도 대작화되는 분위기라 투자자 확보는 더 수월해 질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드 릴리스되는 영화가 자꾸 늘어갈수록 애니메이션의 극장잡기가 어려워지지 않을 까하는 우려도 있다.

애니메이션 전용관 설립이나 다양한 상영관 개발 등 국산 애니메이션의 안정적인 배급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훈(34.남.<그놈은 멋있었다> 조감독)

열악한 한국 영화 현실에서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웰메이드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 우선 기쁘다. 영화는 우선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성공한 영화가 자꾸 나와줘야 다양성도 보존될 수 있다고 본다. 최저생활비에도 못미치는 임금에 체계적이지 못한 제작 시스템은 분명 문제지만 이를 가지고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에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다.

▶서영주 (여.해외마케팅 '씨네클릭 아시아' 대표)

영화를 잘 보지 않던 연령대까지 극장을 찾는 등 시장이 확대됐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특성에 잘 맞는 소규모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현승 (42.남.영화감독)

두 편의 영화가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은 그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선례가 있다는 정도의 의미 뿐이다. 매번 그정도 관객 모을 수 있다는 얘기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1천만시대와 상관 없이 한국영화의 '빛과 그늘'은 여전히 존재했던 것 같다. 배급 시스템의 문제점들이나 다양한 영화의 필요성은 <살인의 추억>이 500만명을 넘었을 때도, <친구>가 800만명을 돌파했을때도 있었던 문제들이다.

▶류형진 (29.남.한국영상원 영화이론 전문사과정)

솔직히 두 영화가 1천만명을 끌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와이드릴리스(대규모 개봉)라는 배급의 힘과 엄청난 금액의 홍보비, 여기에 이 영화를 안보면 '왕따'가 되는 듯한 집단 최면의 결과다. 투자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제작비를 모으는 게 쉬워지는 것은 일부 '큰 영화'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크게 질러서 크게 먹자'는 식의 한탕주의만 퍼질 뿐,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는 이들 영화의 10분의 1도 안되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