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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4박자, 우아한 3박자, <바람의 전설> O.S.T

초반 설정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하여 조금 억지로 세팅된 면이 없지 않다. 왜 춤 선생님은 모두 지방에 있으며 다 소주를 달고 사는 폐인일까를 갸우뚱하는 사이, 어느새 주인공은 춤을 마스터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예상외로 속도감 있게, 흥미롭게 진행된다. 점차 영화는, 기본이 제비인 ‘무도 예술가’의 알리바이가 예술가의 진정성과 헷갈리면서/겹치면서 과연 제비인 그의 진정성이 이야기상에서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 쪽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에서 춤꾼, 제비, 예술가라는 세 개념은 서로 상극인 다른 카드이면서 하나의 조커다. 이 영화의 대중적 기반의 하나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동호회’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댄스 스포츠 바람이다. 댄스 스포츠에 등장하는 장르들, 룸바, 살사 등등의 리듬들은 그대로 음악 장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우리에게 친근한 여러 음악들이 주인공들의 발에 날개를 달도록 해준다.

영화를 주름잡는 리듬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가 자이브고 다른 하나는 왈츠다. 그 개수가 좀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일단은 4박자의 경쾌한 춤 하나, 3박자의 우아한 춤 하나가 기본 축으로 작용하는 것은 심플하고도 선명한 측면도 있다. 신명나는 소통이나 공감대를 표현할 때에는 4박자의 리듬을, 로맨틱한 사랑의 일치감 같은 것을 표현할 때에는 3박자의 리듬을 구사함으로써 리듬의 특징들을 구별해주고 있다.영화 속에서 이른바 ‘자이브’를 출 때 많이 나오는 음악은 바로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의 <록 어라운드 더 클락>. 로큰롤이 아직 완벽하게 8비트로 넘어가기 전, 재즈의 4비트와 블루스의 백비트를 섞은 다음 그것을 다시 백인적인 2박자 단위로 자른 이른바 ‘로커빌리’ 리듬이라 할 수 있는 곡. 영화음악은 이상호 음악감독이 맡았다. 그는 <가위> <폰> 등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으며 여러 TV물에서도 음악감독 역할을 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춤의 리듬 자체에 관한 박물학적인 정밀성보다는 춤의 기본 분위기를 살리는 ‘친근함’을 많이 강조한 듯하다. 아무리 흥겨워도 보는 사람의 다리를 절로 건들거리게 하지 않으면 좋은 댄스음악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댄스음악은 대중과의 소통이 필수적인데, 이 영화가 많이 신경쓰고 있는 대목 또한 그쪽이 아니었나 싶다.

일상에 지친 보통 사람이 춤의 세계에 빠진다는 착상은 어쩌면 일본의 <쉘 위 댄스>와 공유할지도 모르지만 그 접근법이나 테마는 조금 다르다. 일본의 그 영화가 춤이 어떻게 일상을 예쁘게 물들이는 맛난 조미료 역할을 하느냐에 관한 영화라면, <바람의 전설>은 박풍식의 일상에 불어젖힌 춤의 ‘바람’이 어떻게 일상을 제물로 삼느냐에 관한 영화다. 춤에 통달한 주인공치고는 추는 춤이 조금 단조롭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유쾌하고 흥미로운 음악 속에 전통에 빛나는 코리아 제비의 사깃발 서린 ‘진정성’을 보여주려 했다는 시도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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