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화염, 장엄한 음악, 그리고 불굴의 희생정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스펙터클과 몸집을 집어삼킬 듯한 물줄기를 들고 휘청거리는 소방관의 긴장만으로도 ‘화재영화’들은 충분히 영화적이다. 그러나 언제나 거기까지다. 이 자연적인 볼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뻔한 구조와 진부한 영웅담만이 남기 때문이다. <리베라 메> <싸이렌>이 그랬듯 <래더 49>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특이할 만한 점을 찾는다면 <래더 49>에는 아무런 갈등의 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인물들간의 갈등에 기댄 특별한 극적 구조가 없다는 사실이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해주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대형 화재 현장에서 시민을 구하고 불길 속에 갇힌 소방관 잭 모리슨(와킨 피닉스)은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 그의 의식이 점차 흐릿해질수록 지나간 과거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신참 소방관 시절의 도전정신, 사랑에 빠져 꾸린 가정에 대한 기억, 화재로 동료를 잃고 갈등하던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대에 머무르며 생명을 구해냈던 뿌듯함 등이 죽음을 앞둔 잭의 머릿속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영화는 꿈 많던 젊은이가 소방관이 되어 생명에 대한 희열과 희생정신의 마력에 빠져 보냈던 지난 과정들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그런데 그 삶의 에피소드들에는 영화적인 이야깃거리가 없다. 소방관 잭 모리슨의 일상은 기존의 화재영화들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다. 화재가 없는 시간, 낮잠 자고 운동 하고 연애하고 술 마시고 결혼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이 평범하고 소박한 인간들이 생명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드는 감동적인 상황을 포착하고 싶은 것이다.
뻔한 구조와 결말을 지닌 영화들의 성패는 뻔함 속에 그 뻔함을 누를 만한 감동의 순간들이 숨겨져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영화는 사무직보다도 적은 월급으로 자리를 지키는 소방관들의 ‘가공되지 않은’ 희생정신에서 감동을 찾으려 한다. 잦은 핸드헬드로 그들의 삶이 실재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들의 희생정신에는 두말없이 경의를 표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메시지는 <긴급구조 911>보다도 긴장감 없는 이 영화의 지루함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제공하지 못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