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2의 마지막회 대본을 넘긴 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거의 좀비에 가까운 상태였다. 방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으려 허리를 굽히다 픽∼ 쓰러질 정도로 쇠해진 기력에 그 길로 바로 휴대폰을 눌렀다. ‘형! 나 살고 봐야겠어! 개를 먹어야겠어!’ 그 길로 바로 픽업이 되어 성북동으로 향했다. 수육과 전골을 먹으며 내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던 나는 마지막 전골 국물에 밥을 한 공기만 볶은 것은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벤과의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초록 부추로 도톰한 수육을 휘감아 들깨소스를 묻히는 순간, 난 분명히 벤을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난 개 한 마리와 <벤지> <베토벤> <하치 이야기> 같은 영화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벤!(Ben: 마이클 잭슨 노래 표절) 증빙서류는 없지만 모견의 주인은 ‘제법 순수에 가깝다’… 고 우기는 콜리종이었다. 늘 변견만 키우시던 엄마는 주둥이가 긴 벤을 보고 혹시 크면 여우가 되는 게 아니냐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셨고 작은 누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닮았다고 우겼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닮았고 여우일지도 모를 벤은 아무튼 내 친구였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듯 개 품종에 대한 차별도 없는 나였지만 만날 지 배설물을 맛나게 먹다 나만 보면 ‘헝∼’ 하고 바보처럼 웃던 변견들만 키우다가 금빛털에 우아한 걸음으로 살짝쿵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 콜리종을 보니 솔직히 ‘역시 외제가…’ 하는 맘이 들더라.
질풍노도의 고교 시절. 가족도 친구도 성적도 내 꼬락서니도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던 풍랑 같던 그 시절, 벤은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말벗이었다. 신기한 일이지만 거의 모든 이의 어린 시절에 뒷산 혹은 뒷동산이 있었듯 내가 살던 집 뒤에도 작은 산이 하나 있었다. 나는 매일 저녁 벤과 함께 뒷동산 풀밭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벤에게 내가 왜 힘든지 뭐가 불만인지 어떤 꿈을 가졌는지… 속치마 까발리듯 내 마음을 보여줬다. 때론 벤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다 제풀에 서러워 울기도 했다. 그렇게 앞에서 원맨쇼를 하고 있는 나를 벤은 한번도 시선을 떼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봐주었다.
말했듯 벤은 콜리종이었다. 콜리는 양치기개였다. 깊고 다정한 눈동자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벤은 해가 지면 나를 밀어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만히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거나 몇 걸음 앞서 뒤돌아보며 내가 거기만큼 다가오길 기다려주며…. 내가 그림을 못 그렸고 벤이 우유차를 끌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 벤과 나의 우정은 네로와 파트라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다음해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더이상 벤을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 벤은 제법 비싼 가격에 팔려갔고 나는 약 반나절간 식음을 전폐하며 벤을 그리워하다 좀 (지나치게)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다.
6개월 뒤, 우리집 마당으로 깡마른 콜리 한 마리가 불쑥 뛰어들었다. 벤이었다. 빛나던 금빛털은 흙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비만으로 출렁이던 녀석의 몸은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난 간디처럼 말라 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자 눈이 오는 것처럼 마당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9월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벤을 팔았던 애견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벤은 데리고 온 지 이틀 만에 도망을 쳤단다. 100km쯤 떨어진 그곳에서부터 벤은 6개월을 헤매고 헤매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다음날 애견센터 사장님이 다시 벤을 데리러 왔다. 6개월 전 처음 팔려가던 날 벤에게 이빨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을 정도로 벤은 사납게 짖고 반항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의 반항도 없이 차에 올랐다. 하지만 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보며… 같이 울어주지 못한 핑계로 그때 내가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던 거라고 한다면 벤은 이해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