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이창] 별의 임무 - 그저 빛나기
김영하(소설가) 2006-03-03

<대부>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이란 책이 있다.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 마약 갱단의 장부를 통해 그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대부>나 <좋은 친구들> 같은 영화에서는 보여준 바 없는 것들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 위험한 마약 갱이 되려고 할까?” ‘멋있어 보여서’ ‘청소년의 영웅심리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나서’ 같은 설명을 경제학자는 아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별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장부를 분석해봤더니 그 갱단 조직은 놀랍게도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치 ‘패밀리마트’ 신촌점을 내듯이, 새로 갱단의 지부를 설립하려는 자는 ‘검은 사도단’ 이사회의 승인을 받는다. 수익의 50%를 납부하기로 하고 대신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 자, 이제 계약도 하고 이름도 빌렸으니 뭘 한다? 패밀리마트와 똑같다. ‘알바’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알바(갱 용어로는 ‘땅개’)들은 시간당 5달러도 못 벌지만 시카고의 빈민가에는 대기표까지 줘야 할 정도로 지원자가 많다. 다섯명 중 한명은 거리에서 총을 맞아 죽는다는 이 위험한 노릇을 왜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검은 사도단 갱단의 지부장은 멀쩡한 대학을 나온 인텔리였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엄청난 연수입을 벌며 호화롭게 살았다. 반면 그의 ‘땅개’들은 합숙소에서 살며 패스트푸드를 먹고 툭하면 길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삶을 계속했다. 이들은 왜 분배와 평등을 요구하지 않을까? “저, 형님. 차를 좀 줄이시고 저희 봉급 좀 올려주십시오”라고 왜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저자는 ‘인센티브’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분석했다. 지부장의 호화스러운 삶 그 자체가 ‘땅개’들에겐 인센티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부장은 그들의 미래인 것이다. 만약 갱단의 지부장이 검소하게 살며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면 조직은 당장 궤멸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마약을 팔 만한 인센티브로는 너무 부족한 것이다. 만약 지부장이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땅개들에게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충분한 월급과 복지혜택을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은 통찰을 얻었다. 세상에는 극과 극 사이가 대단히 좁은 직업과 아주 넓은 직업이 있다. 예를 들어 우편배달부의 최고 연봉과 최저 연봉의 골은 영화배우의 그것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장동건의 세계와 이제 갓 영화계에 들어온 신인 배우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음악 프로듀서는 내로라할 가수들을 많이 키워냈는데 언제나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걸 볼 때면 ‘뭘 저렇게 사치를 부리나’ 싶었는데 <괴짜경제학>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런 차를 타고 다녀야 재능있는 가수 지망생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검소하고 소박하다면 꿈이 큰 지망생들은 다른 프로듀서를 찾아 떠나갈 것이다. 이는 조폭의 큰형님이 왜 무리해서라도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그 차는 다른 조직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밑에서 고생하는 ‘동생’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계 스타들을 향해 “자기는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혹은 “가난한 조연과 스탭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라고 비난하는 소리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많은 인력이 영화계로 자발적으로 몰려든 데에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화려한 스타들의 존재가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했으리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밟는 감독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 그들이 타고 다니는 멋진 차는 그 자체로 자기 재능을 시험해보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영화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영화계 입장에서 볼 때 스타의 가장 큰 임무는, 비록 대중의 욕을 바가지로 먹는 한이 있어도 저 하늘의 별처럼 환히 빛나며 화려한 삶을 살아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고의 스타들이 검소한 차를 타고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에서 살며 지하철을 타고 현장으로 가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우리나라 영화계의 종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계는 질투와 선망이라는 에너지로 이뤄진 성운이다. 그러니 스타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별로 달가운 결론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스타들이여, 저 뭇별들 가운데 그저 찬란히 빛나주시라. 그게 바로 별이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