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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왕’의 행보, <빔 벤더스 컬렉션>
ibuti 2006-05-11

나에게 최고의 빔 벤더스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다. 아무리 <파리 텍사스>가 걸작이라 해도 <시간의…>의 감동엔 비할 바가 아니다.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시간의…>는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음악을 연주한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의…>는 이후 세 시간 가까이 영사기를 고치는 남자와 아내와 헤어진 남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거나 그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면도를 하고, 전화를 걸고, 버려진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시를 읽으며 밤을 맞이하고, 하얀 모래 위에 검은 똥을 누고, 아버지를 찾아가 다투고, 신문을 만들고, 극장 매점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버려진 집을 찾아갈 동안 아이들은 장난치며 웃고, 한 남자는 영사기 옆에서 자위하고, 어떤 남자는 전날 밤 자살한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독과 서독의 국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날 헤어진다. 하지만 이렇다고 <시간의…>를 일상을 주제로 한 소품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반대로 <시간의…>는 영화가 그 모든 길과 만나고 헤어지는 여정을 포함하는, 그러니까 삶 자체라고 말한다. 서른 무렵의 벤더스(사진)에게 영화는 세상 전체와 같았을 게다. <시간의…>는 더이상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한 극장주의 말로 끝을 맺는다. 영혼과 눈을 착취하는 영화가 판치는 세상에 던지는 그녀의 과감한 선언은 삼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들어도 가슴 저미는 것이다(옛 버전에는 ‘대기업과 미국 메이저가 위세를 부리는 제작·배급시장’을 한탄하는, 그래서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놀라게 되는 대사가 있었는데, 새롭게 마스터된 버전에는 웬일인지 빠졌다). 그러나 그녀는 극장을 폐쇄하진 않겠다고 한다. 미래에 등장할 가치있는 영화를 위해 극장만은 지키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그 뒤 지켜졌을까? 우리는 물론 대답을 안다. 말하기 수치스러운 대답 말이다. 다섯편의 벤더스 영화를 모은 작품집이 출시됐다. <빔 벤더스 컬렉션>은 ‘길의 왕’이라 불리는 벤더스의 행보를 밟아보기에 적합한 선택이며, 독일과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든 발자취에서 벤더스의 미국에 대한 애정과 혐오를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랜드 오브 플렌티> DVD는 인터뷰, 음성해설 등의 부록을 일부 보강해 재출시되는 것이고, 처음 소개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부록으로 보기 힘든 옛 제작현장을 담고 있다. 그외에 영화기자 정한석의 해설책자가 별도 제공돼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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