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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그래도 나는 달린다

이제야 홍길동의 심정을 알겠다. 길동이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듯, 뼈빠지게 운동을 하고도 운동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헬스를 하면서도 수영을 한다고 말해야 하는 심정을, 그대는 아는가. 운동한 지 어언 3년. 날마다는 아니어도 일주일에 네댓번은 한 시간 반씩 운동을 해왔다. 지난 3년간 달린 거리는 그전의 30년 동안 달린 거리의 족히 3배는 넘을 것이다.

시작은 창대하진 못해도 미약하진 않았다. 달릴수록 허리살이 빠지고, 쇳덩이를 들면 ‘갑바’가 늘었다. 나중은 창대하리라, 기대가 거창했다. 쇳덩어리와 친해지기는 정말 쉽지 않았지만, ‘피어보지도 못하고 늙어가는 몸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정말 건강은 엉망이었고, 몸매는 죽음이었다. 불가피하게 건강과 근육의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 달리면서는 ‘멈추면 죽는다. 살아야 한다’고 되뇌었고, 쇳덩어리와 씨름하면서는 ‘몸이라도 만들어야 팔린다’고 절치부심했다. 유산소 운동으로 건강을, 무산소 운동으로 근육을! 저 놀부 두손에 떡들고, 뛰었다.

거창한 명분도 걸었다. 이건 일종의 체제거부 운동이야. 배 나오기를 권하면서도 몸 만들기를 찬양하는 사회에 대한 게릴라전이자 복수전이라고.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달리는 단순한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다 어느 날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해탈할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도 했다. 일을 피해가면서, 친구를 외면하면서, 헬스클럽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꽃시절은 6개월이었다. 1년, 2년, 세월이 흐를수록 회의가 밀려왔다. 몸의 변화는 갈수록 더뎠다. 허리의 남은 군살은 빠지지 않을 것 같았고, 미약한 갑바는 더이상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두 마리는커녕 한 마리 토끼도 잡히지 않았다. 날마다 늦게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였고, 결정적 순간에 세일즈에 실패하기도 여전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회의가 물밀듯 밀려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대체 왜 달리냐’고 나에게 물었다. 멈추고 싶을 때마다 재빨리 패배의 순간을 되새기는 노래로 MP3 음악을 바꾸었다. 카일리가 위로하고, 마돈나가 다그치고, 셰어가 위로했다. 그녀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놈들이 공감각적으로 살아났다. 무릎의 통증은 가슴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달렸다.

홍길동의 사연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결정적 순간, ‘풀 사이드’(Pool Side)에서 만난 분께서 내 몸을 일별하시더니 물었다. “어떤 운동해?” 미천한 몸을 내려다보면서 차마 헬스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달리기 좀 하고….” “수영해?” “…으응….” 맥락상 “수영해?”를 번역하면 “군살도 없지만 근육도 없네”로 해석된다. 졸지에 하지도 않는 수영을 하다니. 더욱 결정적 순간, 머나먼 타국에서 친절한 근육씨를 만났다. 영어로 한두 마디, 할 말이 떨어지자 아부가 튀어나왔다. “야, 너 몸 좋다.” 녀석은 “일주일에 서너번씩 두 시간 운동해”라고 의기양양했다. 은근히 기대했던 한마디, “너도 몸 좋다”는 말씀은 끝내 안 했다. 처참하게도 녀석은 참으로 예의바른 놈이었다. 너의 눈을 탓하랴, 나의 몸이 문제지. 소리없는 아우성만 마음속에 맴돌았다. ‘나도 너만큼 운동하거든!’ 자신감을 잃자 자진납세를 한다. “야, 가슴 한번 만져보자”고 친구들이 덤벼들면 “아직 미천해서…”라며 옷깃을 여민다.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요즘도 운동해?” 역시 속마음을 번역하면 “요즘 운동 안 하는 것 같은데”. 차마 “열심히 해요”라고 못하고 “하긴 해요”라고 얼버무린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니까 남들한테 앙탈을 부린다. 헬스클럽에서 보고 또 보고 하는 사람들을 또 보면, ‘지겨워, 저 인간 또 왔어’, 내가 엄두도 못낼 무게의 역기를 들고 힘쓰는 남자를 힐끗하며 ‘너, 잘났다 임마’. 물론 아령으로 맞을 우려가 있으므로 속으로만 되뇐다. 그리고 운동하는 한 시간 반 내내 역기보다 무거운 ‘왜 하냐’는 화두를 들고 고투를 벌인다. 고뇌를 떨치기 위해 책에서 길을 찾았다. 헬스책을 구입하고, 헬스기구도 사들였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역시 믿을 말이 아니었다. 여전히 힘이 달려서, 남성형과 여성형의 타협점인 중성형 운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몸은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호 통재라, 이렇게 신자유주의 세계질서가 헬스클럽에도 관통하다니. 못하는 놈은 끝내 못하고, 잘하는 놈은 점점 잘하게 되는, 근육의 질서는 강고하다. 그래도 나는 달린다. 그래도 달리면 좋거든. 허접한 몸이라도 망가지면 안 되거든. 그렇게 헬스클럽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