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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다이내믹 코리아!

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국정홍보처의 ‘공식’ 견해에 따르면, “다이내믹 코리아!”뿐이다. 위성채널을 돌리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CNN> 같은 외국 방송에 멈추게 되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한국어 방송으로 돌리려는 순간, 우연히 한국 홍보 광고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익숙한 화면이 스친다. 남대문시장 앞에서 난데없이 난타공연을 벌이다가, 양복 입고 휴대폰‘질’하는 아저씨가 등장했다가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 응원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마무리 멘트, “There is only one word to describe this place. Dynamic Korea!”

볼 때는 짜증스럽지만, 어느새 따라하게 되는 광고 카피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붙인 카피인 것 같은데, 어쩌다 현실에 딱 맞아서 자꾸 웅얼거리게 되는 문구가 있다. 내겐 “다이내믹 코리아”가 꼭 그랬다. 누군가 하는 짓을 보다가, 혼자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웅얼거린다. “다이내믹 코리아!” 탄핵을 당했다가 총선에서 역전했다가 지역선거에서 몰락하는 다이내믹한 정치야 뻔하고 뻔한 다이내믹 코리아의 사례. 일상에서 느끼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등장했다가 어느새 (비록 짝퉁일지라도) 한 여성 걸러 한 여성이 메고 다니는 거리의 구치, 루이 뷔통 백을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저토록 빠르게 명품 브랜드를 학습하고, 신속히 사들인 국민들이 또 있으랴.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한국의 젊은 오빠들의 ‘갑바’를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장하다 대한 건아, 한다면 한다. 도로를 파내는 속도만큼 빠르게 가슴을 파내는 오빠들의 브이넥 셔츠의 깊이를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몸이 좋아지니 자랑도 하고 싶겠지, 그 마음 이해한다. 늙다리 놀라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세대간 영어격차가 이토록 심한 나라가 또 있으랴. 출범 10년 만에 벌써 한총련이 몰락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서구에서는 그래도 학생운동이 몰락하는 데 20, 30년은 걸리지 않았나? 민중당 노동위원장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거쳐 경기도지사가 되는 데 15년도 걸리지 않은 정치인을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승승장구 그분이 어디까지 갈지 정말로 궁금하고 비결도 궁금하다. 나의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이 뉴라이트의 선봉이 되는 데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다이내믹 코리아!”. 압축성장도 했는데, 압축전향이라고 못할쏘냐. 압축변절이라고 어려울쏘냐. 그렇게 “다이내믹 코리아”는 내게 때때로 정말 한국을 설명하는 유일한 생활영어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다이내믹 코리아를 웅얼거리는 입맛이 꼭 쓰지만은 않다. 다이내믹한 코리아가 이뤄낸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피의자 인권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는 아시아의 선도국가라는 일본 인권운동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아직도 미흡하지만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빠르게 개선돼왔다는 국제기구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이내믹 코리아!”. 이렇게 정말 말꼬리를 꼬지 않고, 심사를 꼬지 않고 “다이내믹 코리아”를 웅얼거리는 순간도 적지 않다. 심지어 때로는 한국은 좋아져왔고,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찾아드는 순간마저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한국어로 의역하면 “빨리빨리 대한민국”쯤 되지 않을까. 빨리빨리 대한민국은 초고속 통신망을 빨리빨리 발달시키고, 이동전화를 빨리빨리 퍼지게 하는 밑거름이 됐을까. 예전에 어느 시인이 그랬다. 남들이 300년 걸려서 이룬 발전을 30년 만에 끝낸 나라가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겠느냐고. 제정신이 아닌, 제정신으로는 이루지 못할 것을 이루어온 다이내믹 코리아의 미래가 정말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