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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토끼를 쫓아간 영화, <그녀는 날 싫어해>
김현정 2006-10-31

미국의 위선을 폭로하려고 했다지만, 너무 많은 토끼를 쫓아간 영화.

제약회사 최연소 부사장인 존 헨리 암스트롱(앤서니 마키)은 회장 파웰(우디 해럴슨)의 비리를 주식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가 해고당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직장도 구할 수 없고 자산도 동결된 존은 레즈비언이 되어 찾아온 옛 여자친구 파티마(캐리 워싱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돈을 받고 아이를 만들어달라는 것.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입양허가를 얻지 못한 파티마는 영리하고 잘생긴 존의 정자를 받아 임신을 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성공한 레즈비언 여성을 떼로 몰고온다. 존은 하룻밤에 몇번씩 정자를 쏟아내면서 파웰과의 힘겨운 싸움도 계속해야만 한다.

스파이크 리가 28일 만에 찍은 저예산영화 <그녀는 날 싫어해>는 엔론과 마사 스튜어트 등의 스캔들로 상처받은 미국인들의 도덕적 공황 상태를 보여주는 영화다. 흑인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여 돈만 알고 살아온 존은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기업과 중역들의 위선을 깨닫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남을 권리를 수호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자를 고발했다가 수난을 겪은 경비원 프랭크 윌리스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강자의 부정을 폭로한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투영한다. <그녀는 날 싫어해>는 같은 구조를 성(性)의 문제로도 치환한다. 스파이크 리는 “이 영화는 성문제에 있어 미국의 위선을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에서 도덕과 윤리가 퇴락해가고 있다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증권거래소뿐만 아니라 침실에서까지도”라고 말했다. 일인당 1만달러를 받으며 열아홉명의 여인에게 정자를 제공한 존은 결국엔 수치심을 벗고 임신한 여인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이처럼 의도는 매우 좋았던 <그녀는 날 싫어해>는 의도가 좋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가 자주 그러듯 설득보다 주장이 앞서는 영화다. 서른한살에 부사장에 오른 존이 레즈비언의 씨내리 노릇을 하면서 미국의 청교도적 위선을 깨닫는 과정이나 하층민인 경비원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은 다소 억지스럽다. 그 때문에 그가 청문회 위원들과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평범한 이의 가치를 역설하는 클라이맥스는 가진 자의 오만으로 느껴진다. 스파이크 리는 138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을 논리적 인과를 구축하는 데 쓰기보다 이것저것 연설을 늘어놓는 데 사용한다. 세상엔 수만 가지 위선이 있다 해도, 영화 한편이 그걸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다만 우디 해럴슨과 엘렌 바킨, 모니카 벨루치, 존 터투로 등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재미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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