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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들의 자학적 술래잡기, <열혈남아>
김혜리 2006-11-07

‘엄마’라는 핑계를 소매에 품은 나쁜 남자들의 자학적 술래잡기.

조직폭력배 심재문(설경구)은 무리 안에서도 겉도는 이리 같은 남자다. 소년원에서 만나 한 패거리에 몸담은 이민재(류승룡)는, 재문이 마음을 여는 드문 상대다. 그러나 실수로 틀린 ‘표적’을 해친 민재는 상대 조직 민대식(윤제문)의 칼을 받고 숨진다. 조직 상부는 내심 화해를 원하나, 재문은 복수를 벼르며 민대식의 고향 벌교로 내려간다. 태권도 선수에서 건달로- 어머니가 중병이라- 전신한 신참 문치국(조한선)이 동행한다. 대식이 올 체육대회를 기다리며 정탐하던 재문은 식당을 하는 대식의 어머니 김점심(나문희)을 먼저 만나 그녀가 끓인 국밥을 먹는다. 어머니를 여읜 재문과, 외지에서 생사가 흐릿한 아들 걱정에 피가 마르는 점심은 퉁명한 척하지만 서로를 엄마 자식 보듯 한다.

설경구가 사납게 연기하는 심재문은 미덕이라곤 한 알갱이도 없다. 입만 열면 모욕과 희롱이고 아이들한테 상처 주는 추태도 서슴지 않는다. 대화 끝에 비죽이 농담을 흘리는 버릇은, 맺고 끊기에 서툴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캐릭터의 단면이다. 인생을 패대기치는 그에게, 복수는 또 하루를 살기 위한 핑계에 가까워 보인다. <열혈남아>에 등장하는 몇몇 남자들은 멈추어 돌아볼 줄 모른다. 반성(反省)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점심의 모성은 그런 재문을 멈춰 세우고 오한에 떨게 한다. 급기야 점심의 둘째아들 옷까지 입은 재문은 ‘형제 살해’의 딜레마에 빠진다.

<열혈남아>는 설경구, 나문희의 연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당연한 유혹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기댄다. 조한선은 성숙한 기색이 역력하다. 재문의 성격 묘사에 많은 장면이 소요된 반면, 점심과 재문의 만남의 의미가 역전되는 분기점은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다. 플래시백은 설명 내지 변명의 이물감을 남긴다. <열혈남아>에서 여성과 음악은 일종의 면죄부로 쓰인다. 어머니는 험하게 산 과거의 이유고, 다방 아가씨 미령(김진아)은 오지 않을 미래의 신기루다. 둘 다 남자가 현재를 방기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고약하게 굴던 재문이 잠깐 순해지면 음악이 용서를 권한다. 약한 인간은 영화의 정당한 소재다. 그러나 그 나약함에 도취되는 것만으로는 좋은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연민을 간청하는 한국영화 속 황폐한 남자들의 계보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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