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영화읽기
나보고 <무사>를 비평하라고?
2001-09-26

<비트> <태양은 없다> 작가 <무사>를 말하다

● 정치적 혹은 윤리적 측면은 잠시 잊자. 단순히 시청률만을 놓고 따지자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는 단연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민항기 자폭테러다. 평소 텔레비전을 고철덩어리로 보는 내가 밤새도록 똑같은 신들을 보고 또 보며 앉아 있었으니 말 다했다. 한마디로 오마이갓(!)이다. 그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치밀한 콘티 그리고 엄청난 제작비가 도무지 초현실적으로만 느껴진다. 오죽했으면 네티즌들 사이에 테러의 배후인물이 닥터 이블 아니면 팀 버튼일 것이라는 찬탄 섞인 농담들이 오고갔을까? 아 참, 요새 <무사>가 개봉중이지, 하는 현실감각(?)이 되돌아온 것은 이 전대미문의 블록버스터가 깜짝개봉을 감행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다음이다. 제작사에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상승기류를 타고 있던 객석점유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단다. 21세기의 국제 테러리스트들이 14세기의 고려 무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판국이다.

관람평, 시종일관 노코멘트!

몇주 전 기자 및 평론가 초청시사회가 열린 중앙시네마. 상영이 끝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오자 면식이 있는 기자와 평론가들이 서로 협약이라도 한 듯 내게 다가와 다소 위악적인 눈빛을 장난스럽게 빛내며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 봤어요? 나는 피실피실 웃으며 미끈덩거렸다. 두 눈 뜨고 봤죠. 그들은 집요하다. 아이 그러지 말고, 솔직히, 영화 어땠어요? 내가 되돌려줄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나는 노코멘트죠.

<무사>의 스탭과 캐스트들은 몇년 동안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다. 특히 김성수와 조민환은 동료 이상은 물론 친구 이상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날더러 <무사>에 대해서 평하라는 것은 피붙이가 낳은 자식에 대해서 평하라는 것과도 같다. 자랑하면 팔불출이요 욕하면 개새끼다. 내가 뭐라고 해도 가재는 게 편이요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된다. 내가 <무사>라는 프로젝트의 외견상 아웃사이더인 동시에 심정적 인사이더인 까닭이다. 덕분에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똑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 얘긴 관두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괴로운 부재증명

괴롭고 난감한 질문은 술자리에서도 이어진다. 이번에는 왜 시나리오를 안 쓴 거야? 걔네들이랑 싸웠어? 김성수가 <무사>를 만들 동안 넌 도대체 뭐한 거야? 환장할 노릇이다. 평생토록 함께 작품을 하자며 무슨 혈서를 쓰고 도원결의를 맺은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의무를 방기한 중죄인이라도 되는 듯 다그치니 술도 안 취한다. 나도 핏대가 나서 알리바이를 주워섬긴다. 야, 나도 그동안 열심히 일했어. 시나리오를 세편 쓰고(그중 몇개나 스크린으로 옮겨질지는 미지수지만), 단행본 네권 분량의 원고를 각종 매체에 연재했고, 다섯 군데의 강단에서 시나리오작법을 가르쳤고…. 그래도 소용없다. 결국 술판은 멱살잡이 직전에서 끝난다. 염병할!

네티즌들의 의견은 언제나 그렇듯이 옳고 그르다.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었다고? 결과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감독이 직접 쓰지 않고 전문작가에게 맡겼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꼭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무사>의 시나리오 크레디트를 김성수가 독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김성수가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않고 혼자 독단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만 해도 <무사>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시나리오가 고쳐지는 모든 과정을 줄곧 옆에서 지켜봤다. 그때마다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았고 그것들 중 몇몇은 현재의 <무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 겸 시나리오 작가인 아청도 <무사>에 관계했다.

그는 부용 공주를 위시한 중국인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을 집중적으로 손보는 작업에 성실히 동참했다. 그뿐이 아니다. 김성수는 현장의 스탭과 캐스트들이 내놓는 의견들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할 줄 아는 감독이다. <무사>의 시나리오에는 어떤 뜻에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 있다. 전문작가가 썼더라면 훨씬 더 나아졌으리라는 의견에 그래서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영화 만들기는 본질적으로 협동작업일 수밖에 없으며, 시나리오 쓰기 역시 영화 만들기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빤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무사>의 시나리오 크레디트는 김성수 혼자 감당하는 것이 옳다. <무사>는 김성수가 충무로에 “입사하기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꿈꿔왔던 필생의 프로젝트였던 까닭이다.

“디렉터스 컷은 없다”

<비트>를 찍을 때의 일이니 벌써 5년 전이다. 야, 산아, 중국 대륙에 버려진 고려 무사들이 사막을 가로질러 조국으로 돌아온다, 어떠냐? 김성수가 그렇게 운을 떼었을 때 나는 대뜸 샘 페킨파의 <철십자훈장>을 떠올렸다. 그가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와일드 번치>와 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멋진데? 하지만 돈 엄청 들겠는걸?

당시만 해도 그저 멋진 꿈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김성수는 불과 5년 만에 그 꿈을 현실화시켰다. 그가 수백명의 스탭과 캐스트들을 이끌고 중국 대륙을 누비며 악전고투를 계속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무사>의 제작과정에는 꿈과 힘을 동시에 갖춘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이 서려 있다. 그 감동은 스크린에도 그대로 묻어나온다. 그렇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긴 필생의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무사>의 초고가 나왔을 때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것은 저마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펄펄 살아 숨쉬는 한편의 장엄한 대서사시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나중에야 재삼 확인하게 된 바이지만,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무사>의 시나리오에서 패착점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나는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시간계산상의 착오다. 본래 3시간 분량으로 쓰였으나 실제 촬영에 들어가자 그것이 넘친다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잘라내야만 했고, 러시 편집을 해보니 아무리 줄여도 4시간 이하로는 못 줄일 작품이 되어버렸는데, 그것을 폭력적(!)으로 줄여 2시간 반짜리로 만든 것이 현재 극장에 걸려 있는 <무사>다.

<무사>에 대한 고언(苦言)들은 나름대로 모두 옳다. 플롯이 성기고 캐릭터가 너무 많다. 캐릭터의 내적 필연성이 희박하고 그 변화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무사>가 본래의 시나리오 그대로 극장에 걸렸더라면 듣지 않아도 될 지적들이다. 어쩔 수 없는 편집으로 생긴 가장 가슴 아픈 공백은 리듬과 페이스의 난조(亂調)다. 덕분에 감정곡선은 툭툭 끊어지고 서정에 젖어들기 전에 또다른 전투가 시작된다. <무사> 시나리오의 변천사와 그 제작과정 전체를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들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디렉터스컷’의 욕망을 품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노래는 무대에서 말하고 영화는 극장에서 말할 뿐이다. 어차피 2시간 반으로 개봉할 수밖에 없었다면 처음부터 그에 맞춰 영화를 만들었어야 옳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사실은 이랬는데 결과는 저랬다고 말하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무사>의 제작진은 이 점에서 당당했다. 정우성은 말한다. “아쉬울 것 하나 없다. 극장에 걸린 <무사>가 전부다.” 김성수도 말한다. “디렉터스컷은 없다.”

분석하기 전에 즐겨라!

문맥의 흐름상 이제 <무사>의 장점과 그것이 영화산업 내에서 창출해낸 의의 따위를 늘어놓을 차례다. 하지만 관두겠다. 그래봤자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테니까. 대신,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무사>를 다시 보면서, 내가 ‘비로소’ 이 영화를 ‘즐겼다’는 사실만은 덧붙이고 싶다. 훌륭한 시설의 극장에서 일반관객들과 함께 봤기 때문일까? 심정적 인사이더로서 품고 있던 흥행과 비평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기 때문일까? 냉철하게 뜯어보리라던 결심은 영화가 시작되자 가뭇없이 잊혀졌고 나는 어느새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화면 죽이고 사운드 좋고 배우들은 멋졌다.

영화는 분석과 논쟁의 대상이기 이전에 즐김의 대상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다. <무사>는 너무 많은 소문과 비평의 그늘에 가려져 있고 너무 높은 기대수준에 버거워하는 영화다. 있는 그대로의 <무사>를 보자. 평론이고 시나리오고 제작후일담이고는 다 그림자에 불과하다. 분명한 실체는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2시간 반짜리 <무사>라는 영화 그 자체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다. 적어도 현재 미국이 획책하고 있다는 ‘더러운 전쟁’보다야 훨씬 더.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