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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봉준호 감독 대담
정리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7-02-17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바다 건너의 친구에게도 손짓을 했다. 지난 2004년, 서울아트시네마가 개최한 회고전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났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첫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부터 멀리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던 친구들 중 한명이다. 두 번째 영화제를 맞이해 자신의 신작인 <절규>를 들고 한국을 찾은 그는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관객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월26일 열린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학교’에서는 자신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끼친 영화들을 소개했는가 하면, 다음날 열린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에서는 서로의 영화에서 느낀 감동과 호기심을 고백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관객이 <절규>에 보여준 관심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 관객은 전세계에서 가장 예리한 영화감상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관객이 감독인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줘서 기쁘다.” 1월의 마지막 주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옮겨보았다.

“당신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롱숏의 미학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인간이 가진 공포에 대한 소재는 어디서 얻나?” 서로의 열혈팬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지난 1월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났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절규> 상영 뒤 단상에 오른 두 감독은 서로의 비기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내는 한편, 그들의 공통주제인 사회와 인간의 공포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약 2시간 동안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들며 진행되었던 그들의 대화를 소개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먼저 변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절규>를 만들 당시는 공포영화의 인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시기였다. 그래서 제작 도중 바꿔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공포영화 같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공포영화를 만들면서도 전 장르를 넘나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공포영화의 붐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웃음)

구로사와 기요시(왼쪽) 감독과 봉준호 감독

봉준호: 일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팬으로서 2시간 동안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 예전에 봤던 <큐어>와 <회로>와 함께 <절규>를 합쳐서 내 멋대로 이름을 붙여보자면, ‘일본사회의 집단질병히스테리 공포 3부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공포영화의 트렌드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고 말했는데,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은 매우 독특한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구로사와 감독만의 긴장과 공포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구로사와 기요시: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다. 유령이 날아다니는 장면은 사실 큰 용기를 내서 만든 장면이다. <링> 같은 공포영화를 보면 유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TV에서 나오기도 하고. (웃음) 하지만 어떻게 사라지는지는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유령이 어떻게 사라질까 궁금했다. 보통 공포영화에서 유령은 주인공만이 볼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유령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보여줄 필요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유령이 돌아가는 곳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걸 묘사하면서 유령이 사회 전체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알기 쉬운 공포영화를 본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웃었을 것 같기도 한데, 공포영화를 몇편씩 만들다보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웃음)

봉준호: 당신 영화에 나타나는 유령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특히 <회로>에서 벽에서 나오는 여자 유령은 정말 경악스러웠다. 휘청거리면서 쓰러지기도 하지 않나. 그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후배감독들과 길에서 흉내를 내본 적도 있다. (웃음) 이번 영화에서도 유령이 날거나,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가오고 거기에 따라 라이팅이 달라진다. 그런 식의 디테일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가?

구로사와 기요시: 자세하게 봐줘서 고맙다. 기본적으로 내 영화에서 유령은 인간이 연기한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유령도 한때는 인간이었지 않나. 그래서 유령이 할 수 있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계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는 유령 대신 괴물을 등장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나왔고,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은 한편 실망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뭘 해도 흉내냈다고 할 테니까. (웃음) 나도 봉준호 감독의 팬으로서 물어보고 싶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에서 당신은 인간이 가진 무서움을 다루었다. <괴물>에서도 정말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라 인간인 것 같다. 인간이 가진 공포에 대한 소재는 어디서 얻나?

봉준호: 기본적으로 나는 한국사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개인이건 누구건 사회의 시스템이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나 이런 힘없는 사람들을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 싶은 절망감이 있었다.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연쇄살인범과 괴물로 나타났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이런 사회에서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힘겹고, 공포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구로사와 감독도 더욱 예리하게 일본사회의 무의식적인 공포를 다룬 것 같다. <큐어> <회로> <절규>를 보며 일본사회가 가진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느꼈다. 당신 영화에서 공포의 깊은 뿌리는 일본사회나 집단 무의식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역사적인 맥락을 어느 정도 의식하나?

구로사와 기요시: 사실 <큐어>와 <회로> 같은 영화는 특정 시대를 다루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일본이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희생되고 숨겨진 것들이 사회 내부에 쌓여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 의식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 있을 뿐 특별히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한국도 그렇지 않을까?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발전에는 거짓이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나아가도 되는 건지, 그러면서 망각을 강요받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관객이 내 영화를 공포영화로 즐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그렇게 관객을 즐기게 하는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 두 가지를 양립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봉준호| 나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영화적인 흥분과 장르적인 쾌감에 정신없이 휩쓸리다가도 극장을 나서면 영화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침전물처럼 남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회로>와 <큐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느 스릴러보다 긴장감있고,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섭지만 일본 사람들의 히스테리와 집단적인 공포가 느껴진다. <절규> 역시 그런 일관된 맥락이 있는 것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어느 작품을 봐도 품위가 있다. 보통 감독은 관객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이 영화의 전면에서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건 영화라는 의식이 있고, 그만큼 영화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 같다.

봉준호: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건 취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정색하고 말을 잘 못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나 같은 성격에게는 문자메시지가 정말 좋다. (웃음)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는 일단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과 영화만이 선사할 수 있는 흥분이 있다고 본다. 이건 주제를 약간 바꾸는 이야기인데, 나는 당신의 연출방식을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다. 영화를 보면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멀다. 그런 롱숏과 롱테이크는 일반적인 공포영화에서 쓰이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긴장과 공포감이 유지된다. 당신만의 롱숏의 미학이 있는 것 같더라. 그런 스타일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구로사와 기요시: 나만의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봉준호 감독도 비슷할 거라고 본다. 영화는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 스탭이 함께 만든다. 또 특정 장소에 가서 찍는 것이다. 그런 방식에서 스타일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떤 숏이 있고 다른 숏이 있는데, 그 둘이 연결되면 그 관계는 관객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롱숏이 오래되면 관객은 숏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난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에 복잡한 관계를 잘 표현하진 못한다. 결국 내가 단순해서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웃음)

봉준호: 예전에 당신은 어느 단계까지는 본인이 설정하고 계획하지만, 어느 가이드라인을 넘으면 발생하는 일을 찍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의 영화를 보면 프레임 구석까지 아주 정교하게 장악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영화의 관습을 생각해보면 리허설을 철저히 할 것 같더라.

구로사와 기요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일본의 스탭들은 감독의 의도를 완성시켜주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일한다.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들이 있으니 거짓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정밀함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또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의 영화는 리얼하면서도 추상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살인의 추억>은 시간과 지역이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장면은 배경에서 배우들이 떠 있는 느낌이더라.

봉준호: 우리 세대 이전의 감독들은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나 역시 리얼리즘영화를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한 강박이나 의무는 없다. <괴물>처럼 황당한 영화도 부분적으로는 합동분향소 장면처럼 한국적인 리얼리티가 있는데. 그건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표피적인 리얼리티라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에서도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은 느껴지지 않는다. <밝은 미래>를 보면 어항 속의 해파리가 마룻바닥으로 기어나와 강까지 가지 않나. 하지만 또 살해당하는 공장 사장님의 캐릭터는 정말 리얼하다. 개별적으로 보면 일본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생각하는 리얼리티는 어떤 것인가?

구로사와 기요시: 나도 봉준호 감독처럼 리얼리즘에 얽매이는 태도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배우에게는 평소에 하는 수준 내에서 해달라고 말한다. 한국은 또 모르겠다. 예를 들어 송강호 연기는 아주 리얼한 것 같지만, 과장된 느낌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연기의 리얼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봉준호: 송강호는 어떤 상황이든 실제 상황처럼 만드는 괴력이 있다. 때로는 과장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분향소 같은 곳에서는 다 그런다. 한국은 다혈질 국가다. (웃음) 같은 영화를 가지고 일본을 가보면 관객이 모두 절제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 한국 같은 다혈질 벨트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관객은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울기도 한다. (웃음) 그런가 하면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은 쿨 벨트다. 여담이지만,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겼던 나라를 생각해보라. 네덜란드한테는 5:0으로 지기도 했고, 독일 같은 나라는 절대 못 이기지 않나. (웃음) 어쨌든 송강호는 내 영화에서는 그런 식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당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궁금한 점이 있다. 야쿠쇼 고지는 특히 당신의 영화에서 볼 때 더 우울하고 외로운 것 같다. 그런 배우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구로사와 기요시: 야쿠쇼 고지는 실제로 많은 영화에 나오는 배우다. 나랑 동갑인데, 사회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역할을 기대받는 사람이다. 맡은 캐릭터도 아버지나 경찰청 간부, 도쿄도지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 영화에서만큼은 몇살을 먹어도 항상 불안한 모습으로 나온다. 물론 내가 실제 생활에서 불안정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게 야쿠쇼 고지다. 다른 배우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리얼하게 연기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조용하게 말하는 스타일로 연기한다. 그리고 아까 축구 이야기하면서 한국을 다혈질 벨트라고 했는데, 그런 나라는 대체로 영화도 재밌다. 독일, 영국영화는 대체로 재미없지 않나. (웃음) 나는 특히 미국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할리우드영화와 똑같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곳에는 감독을 속박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 나름 어느 정도는 참겠지만,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던 방식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봉준호 감독은 어떤가. 해외에서 연출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던데.

봉준호: <살인의 추억> 때도 그랬고, <괴물> 이후에도 일본과 프랑스, 미국에서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프로젝트가 있어서 할 수 없었다. 해외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서로 다른 나라의 감독과 배우들이 교차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감독 입장에서 영화를 얼마나 컨트롤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또 영화가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를 놓고 봤을 때, 한국이란 나라가 나에게는 너무 오래 사귀었고 따라가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애인 같다. 그래서 한국과 내가 분리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구로사와 기요시: 나도 당신과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일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연히 태어나고 자랐던 나라의 의미일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일본사회가 가진 장단점을 이해하려고 했다. 앞으로 어느 나라에서 영화를 만들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도 일본사회가 엿보이는 영화를 만들 것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절규>는 어떤 영화?

유령이 보여주는 불안의 상처

간척개발로 만들어진 바다 옆 공터.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저항하는 여자를 물웅덩이에 질식시켜 살해한다. 현장으로 출동한 요시오카 형사(야쿠쇼 고지)는 사건을 수습하던 중 그곳에서 자신의 코트에 달려 있던 단추를 발견한다. 우연의 일치라 여기기엔 꺼림칙한 상황. 더군다나 시신에서도 자신의 지문이 발견되자, 요시오카는 기억을 의심하며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한편, 같은 수법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사건은 더욱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파트너인 미야지에게까지 의심받던 요시오카는 사건과 자신의 관계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결국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그는 애인인 하루에와도 멀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요시오카 앞에 첫 사건의 피해자로 보이는 유령이 나타나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그는 한동안 잊고 있던 15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유령의 출현과 더불어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공포를 묘사하고 싶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절규>(2006)는 집단의 무의식에 내재된 공포를 드러내던 그의 영화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전반에 스며 있는 절망적인 기운은 직접적으로 공포를 드러내기보다는 공포의 정서를 농축해놓았던 그의 전작과도 닮은 부분. 건물은 지진에 시달리고, 폐허나 다름없는 스산한 공터에는 바닷물이 축축하게 스며들어 어느 하나 안전한 곳이 없다. 요시오카가 바라보는 일본사회는 감독의 말처럼 “발전한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곳”이다. 곳곳에서 간척사업이 진행 중이고 이미 간척된 땅에 세워진 건물들은 언젠가 다시 무너질 순간을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절망의 기운은 불안의 공간에 놓인 인물들에게도 스며든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소외된 그들은 분노를 증폭시켜 살인을 저지른다. 감독은 분노를 증폭시킨 원인을 유령이란 실체로 묘사하는 한편, 그 이면에는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숨길 수밖에 없었던 불안과 고독이 빚어낸 상처를 담아내고 있다. <큐어>에서 “당신은 누구야,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라고 말하던 마미야처럼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이 유령은 또한 발전과정에 동참한 사람들이 한동안 잊고 있던, 혹은 잊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절규>는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여타의 호러영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다. <절규>를 통해 현대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억누를 길 없는 공허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특별초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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