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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2001-11-02

김기덕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다 (2)

임 >>> 인터뷰에서 보면 그런 고민 안 하실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최저로 들어가야 하는 돈은 있잖아요, 아무리 감독님이 돈을 적게 받아도. 예를 들어서 7억∼8억원, 마케팅까지 10억원이면 적어도 서울에서 한 10만∼15만명 정도 봐줘야 하는 돈이잖아요. 사실 그게 쉬운 건 아닌데, 어떤 부분이 보강되면 그걸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김 >>> 많은 사람들은 소재를 그 이유로 삼지만, 그건 1/10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50%는 스타 시스템과 제작비, 과대광고 뭐 이런 게 차지하죠, 사실은. 나머지 중 40%는 용감하게 관객한테 돌리고 싶어요. 관객이 이 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이 갖고 있는 의식세계에 대한 접근을 상당히 게을리하는 아닐까 하는. 물론 핑계죠. 그 핑계도 상관없는 것이, 결국 그런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1만명을 위해서 난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 1만명을 지키는 것이 저에겐 숙명이죠.

임 >>> 그래서 감독님의 선택이 궁금한데, 50%를 캐스팅과 마케팅에 의존해서 10만명에게 보여주는 방식에 좀더 타협을 할 것인지, 아니면 1만명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재정비할지….김 >>> 음… 1만명은 아닌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빠뜨린 게, 비디오가 있기 때문에…. 한 30만명은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비디오 출시에서 적어도 2억원? DVD시장까지 생기니까 앞으로는 평균 2억원으로 보고, 극장에서 이래저래 한 1억원, 이렇게 보고, 그래서 한 3억원 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 다음에 보너스는 외국이죠. 외국에 팔릴 수 있는 영화, 외국영화제나 이런 데서 수상해서 받는 상금, (웃음) 뭐 이렇게 해서 아주 가난한 집 살림 꾸리듯 가는 거겠죠. 아니면 나 역시 스타와 블록버스터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잔머리를 쓰면서 만들어야 하나….

임 >>> 저는 관객보다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 참 큰 것 같아요. 한국문화 전반에 걸쳐서 너무 원칙이 없고,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것에만 의존하는 영화 풍토도 결국 사회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들고, 관객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관객이 영화 분야에서만 게으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모든 시스템이 엉망이 돼 있으니까…. 김 >>> 늘 관객의 수준을 맞출 수도 없는 거고, 관객이 이미 다른 의식세계를 갖고 있는 감독의 수준을 맞출 수도 없는 거예요. 그건 누가 우등하다, 열등하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미 그 세계 안의, 나이 안의 완성일 수 있거든요. 그 사람들 의식 안에서는 <조폭 마누라>가 완성일 수 있어요. 근데 저희 입장에서는 또 분명히 아닌 거잖아요. 그것이 일치하기를 기대하기보다 이미 그렇다, 이건 계몽이 아니라 인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미 확보됐거나 확보될 여지가 있는 관객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그 시장이 그리 크진 않다는 거죠.

임 >>> 뭐 같은 얘긴데, 큰 걸 바라는 건 아니거든요. 어쨌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펼칠 만한 최소한의 조건은 돼야죠. <조폭 마누라>를 봤는데, 7천원을 내고 재미를 원하는 사람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조폭 마누라>를 보는 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조폭 마누라>도 보면서, 영화가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봐주어야 하는데 편중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감독들이 자기 생각을 갖고 영화를 만들다가도 방향을 틀고, 우리가 스스로 감독들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가난한 집 살림 꾸리듯이영화 만들면 돼

김 >>> 전 요즘 자체 시스템을 많이 구상해요. 아주 가난하고 열악하더라도 자체 제작하는 시스템. <나쁜 남자> 말고도 <무장공비 이야기>라고, 분단이란 비극이 사실은 간첩을 쏜 놈이나 맞고 비참하게 죽는 놈이나 사실은 비극이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게 하나 있고, <>이란 프로젝트도 있고. 스님들에 대한 얘긴데, 시놉만 거의 마무리 단계인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도 있고요. 끊임없이 계속 생각해서 발상을 넓히고 심도를 깊게 하는 시간을 일부러 가지고, 이렇게 언론에 얘기하는 것은 저와의 약속이에요. 내가 뱉어놓으면 지켜야 하는 약속을, 저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서 하는 편이에요.

임 >>> 김 감독님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살면서, 영화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에요. <와이키키…>하고 <세친구> 사이에 기간이 길었던 것도, 만들고 싶은 아이템이 있었는데 제작비가 없어서는 아니었고. 그러니까 영화가 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전 오히려 좀 사는 데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영화를 만들든 안 만들든 기본적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그냥 인간 임순례란 사람의 정체성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영화를 안 만들고 시골에서 텃밭 가꾸고 살아도, 정신적인 갭이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김 감독님 같은 경우는 지금도 막 아이템이 샘솟는 거잖아요. 감독들 중에서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독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아이템을 찾는 사람도 많아요. 1년에 한편은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자기 속에서 우러나온 아이템이 아니라 막 연구하고 고민하고 찾고 이런 거 있잖아요. 전 그게 체질상 안 맞아요.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던 건데, 다행히 그냥 놀지는 않았나봐요. 오래 놀아서 그런지,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생겼어요. 제가 지금 갖고 있는 게 4가지 정도 되는데, 다음 작품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지지를 받으면 그 4가지 아이템 중 적당한 것을 순서대로 풀 수 있겠죠. 만약 그렇지 않고, 이게 외면을 받으면….

김 >>> 또 텃밭을….(웃음)임 >>> (웃음)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 오겠죠. 저도 개인적인 생각은 김 감독님과 많이 비슷해요. 아이템이 없어서 못 만든 거고, 있다고 할 때는 그것을 외부적인 조건에 맞추기보다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게 디지털이 될 수도 있고, 16mm가 될 수도 있고, 초저예산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거예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맞춰서 만들 거고요.

“욕 먹는게 뭐 불이익인가욕도 안 해주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김 >>> 음… 생활은 어떻게…. <와이키키…> 많이 받으셔서 여유있으세요? 임>>> (웃음) 김 감독님은 뭐, 어떻게….김 전 그래도 자주 만드니까…. 1년에 연봉 2천만원은 돼요. 텃밭에 농사를 지어서 그걸로 연명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할 수 없겠지만, 한국의 농촌이라는 게 다 적자 문화고, 저도 텃밭을 일구고 싶긴 한데….(웃음) 전투적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하나는 결국 경제적 여건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왜 숨겨야 할 말도 하나 그럴 지 모르지만, 노동 역시 창작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노동의 의미로 영화를 만들기도 해요. 아주 적은 개런티지만.

임 >>> 저는 기본적으로 생활 규모가 굉장히 작아요. 화장품, 옷 이런 거 거의 안 사고, 과거에는 술값으로 좀 지출하는 정도라서…. 뭐 어쩌다 빚지면 강의를 하든지, 연출료를 받는다든지 해서, 모은 건 없지만 그냥 근근이 살아가요. 김 >>> 혼자 프랑스에 계시면서 근검절약하는 법을 철저하게 배워오신 것 같아요. 아, 또 물어볼 것은, 임 감독님이 정말 여자인가.(웃음)임 >>> <와이키키…> 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본 사람이 그런 농담을 했대요. 원래 남자였는데, 수술해서 이렇게….(웃음) 김 >>> 전 왜 그런 질문을 하냐면, 유지나, 심영섭 같은 여성평론가보다 김기덕을 더 많이 이해해줄 것 같아서. (웃음)

임 >>> 김 감독님이 여성평론가들이나 여성관객한테 공격을 많이 당해오다 <수취인불명>을 통해서 약간 화해 무드가 조성이 됐지만, <나쁜 남자>가 개봉되면 다시 재개될 것이다, 그런 소문 들었어요. 김 >>> 왜 그런 불행을 자초하느냐? (웃음) 임 >>> 감독님의 여성 묘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기보다는 작가이기 때문에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이 그 장치를, 자기가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는 것이 많은 사람들, 많은 여성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좀더 큰 시각에서 봐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저도 <우중산책>에서는 여자를 그렸잖아요. <우중산책>에서 여주인공을 그린 방식과 <세친구>나 <와이키키>에서 남자들을 그린 방식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다만 소재로 남자를 이용했다는 차이지. 제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똑같은 시각과 비중을 가지고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앞으로 만들 영화들이 남자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영화는 여자에 관한 얘기예요.

김 >>>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계신 거예요. 여자다, 남자다라는 걸 감성적으로 구분한다는 게, 거기서 왜곡된 비율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거든요? 저도 <파란 대문>이란 영화를 만들었잖아요. 두 여자에 대한 얘기를 했고, 더러 어떤 여자들은 어떻게 여자들을 아느냐고 얘기했거든요? (웃음) 사람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접근할 수 있는 거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인간을 바라보면 여자와 남자라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으로 좁혀들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보면 나는, 앞으로 계속 욕을 먹어야 하고…. (웃음) 욕먹는 것이 그렇게 뭐 불이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욕도 안 해주는 영화가 얼마나 많아요. (웃음) 난 감독들이 어떤 반응이든 즐겼으면 좋겠어요.

임 >>> 다 기질의 차인데, 김 감독님은 자기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것에 반박하면서 그걸 즐기는 편이고.김 >>> 난 막 공격하잖아요. (웃음) 직업을 바꿔라, 더 늦기 전에. 전 초기에 비난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이건 즐길 만하고, 씨름할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비참해요. (웃음) 그럴수록 한술 더 떠야지. 그럴수록 김기덕은 더 사악해집니다. 임 >>> (웃음) 전 좀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좋게 얘기해도, 나쁘게 얘기해도. 전 모든 것에 대해서 반응을 잘 안 해요. 평론가뿐 아니라 관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 영화에 관객이 300만명, 400만명이 들어도 그냥 무디게 반응할 것 같아요.

김 >>> 그럼 영화 만드는 건 즐기세요? 임 >>> 그런 편도 아니예요. 지금 다른 거 할 게 없어서(일동 웃음) 만드는 거지,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주 안 만드는 것 같아요. 자주 만드는 거 보니까 감독님은 영화 만드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김 저에게 영화는 큰 숨쉬기, 1년에 두번은 쉬어야 하는 커다란 숨쉬기예요. 임 >>> 근데 아무리 씩씩하고 의연해도, 영화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술, 담배도 안 하시는데 어떻게 풀어요?김 영화는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일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일이에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안 해본 것 없이 다양하게 다 해봤거든요, 그림도 오래 그려봤고. 그러면서 나름대로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에 와 있다, 이 시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조그만 컴퓨터 기기를 꺼내며) 그래서 전 늘 이걸 길거리에 갖고 다니다가 앉아서도 글을 써요, 요즘에는.

임 >>> 그러니까 감독님은 굉장히 행복하신 거예요. 흥미로운 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김 >>> 내 생각을 대중화한다는 것, 그 대중화가 진짜 이뤄지는 지 불투명하고, 몇명이 주시하고 몇명이 외면하는지는 몰라도 끊임없이 그 무대에 내가 설 수 있다는 게…. 그러나 이것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이게 늘 유작이다 싶죠. (웃음) 매번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찍어요. 정리 황혜림·사진 오계옥·디자인 박현일 ▶ 김기덕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다 (1)

▶ 김기덕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