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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2001-11-09

대안학교 하자센터 `우주로 통하는 골방` 멤버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이야기하다 (2)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는 스무살 또래들의 눈망울은 어떤 것일까? 찬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마지막 잎새처럼 오직 한 군데 극장에서 상영을 계속중인 이 영화에 대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고 있지만 정말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동갑내기인 82년생 개띠 젊은이들일 것이다. 스크린을 벗어나 현실에서 만나는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과연 자기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영등포구청 근처에 위치한 대안교육기관인 직업체험학교 하자센터(센터장 조한혜정)에서 만난 그들은 더러 학교를 중퇴하기도 하면서 남들과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하자센터에서 매일 아침 조찬모임을 갖는 ‘우주로 통하는 골방’의 멤버들이며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텍스트’라는 영상관련 수업을 함께 듣는 그들은 “제발 작품성이 어쩌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 어쩌고 하는 얘기를 그만두라”고 입을 모은다. 어른들의 그런 딱딱한 주례사말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놓고 진짜 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놓인 불안감, 가족과 학교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처음 만나는 자유의 위태로움, 도시의 그늘에서 느끼는 소외, 세상에 대한 낯섦과 경계심 등 그들은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발견한 자기 모습을 털어놓으며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기를 주인공으로 삼은 최초의 영화는 그들에게 ‘잘 만든 한국영화’ 이전에 ‘사려깊은 선물’인 것이다. -편집자

“나를 위한 영화는 처음이야”

대부분 극장에서 1주일도 안 돼서 간판을 내렸기 때문에 서둘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을 텐데, <고양이를 부탁해>를 어떻게 봤는지부터 얘기해보자.

● 원 개봉하기 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내 또래 여자애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온다고 해서 눈여겨봤죠. ‘디지털 이미지와 디지털 텍스트’라는 수업의 숙제이기도 했고요. 없는 시간 쪼개고 쪼개서 개봉하는 날 신촌에서 조조로 봤어요. 조금 늦게 들어가서 자리 못 찾을까봐 좌석표 확인하고 들어갔더니 사람이 너무 없는 거예요. 그때까진 조조니까 그려려니 했는데….

● 성경 전 개봉날 강남에서 봤는데 역시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친구랑 같이 갔는데 극장 안에 딱 6명, 세쌍이 있었어요.

● 지지큐 전 늦은 시간에 봤는데 관객 자체가 별로 없는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이 극장 가운데 있는 좌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봤어요.

● 타락 일요일 조조에 봤는데 매진될 줄 알고 서둘렀어요. 일요일인데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극장이 텅 비어 있는 거야. 일요일 아침이라 다들 늦잠 자느라 그러려니 했어요.

● 오로라 전부터 기대했던 영화였어요. 포스터도 예쁘잖아요.

● 타락 하자센터 안에서는 다들 서로 보러 가자 그래서 다른 데서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요.

● 원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영화는 어땠나? 기대한 걸 충족시켜줬는지?

● 원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는데…. 그냥 선물이 아니라 헌정받는 선물 같은 거요. 일단은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없었으니까…. <박하사탕> 같은 걸 보면 사람들 줄줄 울고 나도 분위기 휩쓸려서 눈물 찔끔 흘리고 그랬지만 내심 찝찝했거든요. 그때 아저씨들은 자기 이야기라면서 감동받고 물론 거기에도 트릭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위한 영화는 없었으니까. 치밀하고 섬세하고 애써서 잘 만든.

● 성경 예전에는 한 사람에 집중하고 감정이입해서 보는 스타일이었는데 고양이는 주인공이 여럿이니까 누구 한 사람한테 집중하기보다 세명 모두에게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내내 부산에서 살다가 혼자 서울 올라온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서 혜주가 서울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고 지영이가 집이 무너지고 막막해지는 것이나 태희가 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도 공감이 갔어요. 아주 흥미롭고 흥분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막 슬픈 것도 아닌데 뭔가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그래도 살아야지 뭐.

● 원 서울로 올라가고 이런 건 안 좋은 말이야.

● 성경 아, 정정해주세요.

● 지지큐 남자라서 특별히 달리 느낀 건 아닌 거 같아요. 스무살이라는 어정쩡한 나이가 유효한 거니까. 삶의 궤적이 그렇게 평탄하지 않은 게 다 스무살 아니겠어요. 남자, 여자 다 느끼는 그런 거지요.

● 원 왜 영화 보라고 만든 10대 후반 20대 초반 사이 여자들이 보러 가지 않나 생각해봤어요. <친구> 보러도 여자애들이 많이 갔을 텐데 그 사람들이 왜 안 움직일까 궁금하더라고요. <비트>가 개봉할 때 인천에 살았는데, 지금도 인천에 살고 있지만, 부평에 작은 극장이 하나 있어요. 부평은 인천의 3대 번화가 중 하나죠. <비트>를 보러 가는 여고생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18세 관람가였지만. <비트>를 보고 눈물 흘리면서 그게 진짜라고 믿는 게 있어요. 저건 진짜야, 저 장면은 구라야 하면서 이미지를 믿어버리는 거나 <추적60분> 같은 데 나오는 결손가정 보면서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고 믿는 거나 비슷한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영화가 충격일 수 있어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게 있는데 소문이 퍼져나가는 게 문제예요. 선입견이죠. ‘여성감독이 섬세하게 조용한 일상을 파헤치는’ 혹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하는 식으로 몰고가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예술영화, 아트영화라는 선입견이 생겨서 안 보는 거죠.

● 지지큐 그러니까 평론가들이 좋은 영화라고 떠드는 영화는 안 보러 가는 거 같아요. <고양이를 부탁해> 볼 때 의아했던 게 같이 보고 나가던 관객이 두 사람이나 “저런 애들이 어딨냐? 사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는 거예요. <친구> 같은 걸 보면 <친구>에 나오는 어떤 것을 경험한 사람은 60년대 부산에서 태어나 교복입고 자란 남자들밖에 없을 거 같은데 그건 우리 세대에도 공통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반면 오히려 <고양이를 부탁해> 보면 스무살 정서가 세밀하고 예민하게 그려졌는데 내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스무살 처음 만나는 자유`, 정말일까?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처음이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고양이를 부탁해>는 스무살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 성경 10대, 20대 나누는 게 우습다는 생각을 하다가 검색사이트에서 스무살을 쳐봤어요. 그런데 스무살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스무살까지’, ‘스무살에서’, ‘스무살부터’식으로 스무살은 그 단어 자체보다 조사에 힘을 줘서 얘기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고 불안한 시기인데 그런 고민들이 일순위가 아니라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아요.

● 원 TTL 광고 있잖아요. ‘스무살, 처음 만나는 자유.’ 신촌을 걸어가다가 광고판에 그게 뜨는 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게 자기만의 의사소통 네트워킹을 두는 거잖아요. 누가 지었는지 잘 지었다, 그랬죠.

● 타락 꼭 나이랑 상관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20대보다 많건 적건 어디 가서 어떻게 살던 고민하는 건 똑같아요.

● 원 만든 사람하고 나 사이에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한 가지 괜찮았던 장면은 배두나가 “난 미성년자 아니에요” 하는 거요. 스무살이라고 세상이 내 것이 아니에요. 되게 애매한 기준으로 성년, 미성년을 나눠놨어요.

● 타락 맞아요. 법 따라 다 달라요.

● 원 생일 지나면 성년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1월1일 지나야 성년이 되는 걸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치면 난 아직도 미성년자고 미성년자는 그래요. 사회에서 없는 거죠.

● 성경 수능 보고나서 같이 영화보러 갔다가 생일이 안 지났다고 영화 못 본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주민등록증에 생일 살짝 고쳐가지고 본 적 있어요.

● 원 지영이가 “제가 본인인데요” 하는 장면 있잖아요.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가 본인이에요. 미성년자는 본인도 못되고 사회에서 없는 존재예요. 그런데 생판 고아가 됐으니까…. 정말 살기 힘들 거야.

● 성경 학교 다니면 혜주 같은 캐릭터나 태희 같은 애들 많아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동받고 그러기도 하죠. 특히 태희가 지영이를 기다리는 걸 보면서 나도 저런 친구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 원 그런데 한 가지 유감이라고 한다면 학교에 대한 경험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 장면이 처음 한번 짧게 나오잖아요. 그때는 짧지만 좋았던 시절이고 그뒤는 아니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다들 마음은 딴 데 가 있죠. 82년생이고 인천에 있는 여상을 졸업했다면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갈 길이 정해져서 학교에서도 괴로웠을 거예요. 학교는 우정을 쌓는 상아탑이고 사회는 다르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또래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말하다 (1)

▶ 또래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말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