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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뒤안길] 80년만의 베스트셀러, <게공선>
2009-03-18

1929년 출간되고 80년이 지나 5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게공선>. 그 인기는 현재도 유지돼 여름에 개봉할 영화 흥행 여부가 눈길을 끈다. 소설의 무대는, 극한의 캄차카(Kamchatka) 앞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게공선.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과 노동감독의 폭력에 목숨까지 빼앗긴다.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몰린 채 분노를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노동감독과의 투쟁에 나선다.

<게공선>이 지금에 와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당시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비정규직과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은행에 취직한, 당시로서는 엘리트였다. 사무처리 능력이 뛰어났던 고바야시는 은행업무를 재빨리 처리하고 남은 시간에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가 근무했던 홋카이도 오타루 지점은 항구와 운하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아 항만 노동자들의 실태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 홋카이도는 ‘국내식민지’라고 불린 노동환경이 일본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었다. 그 속에서 누구보다 비참한 처지이던 이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이다. 고바야시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 반대를 주장하여 정학처분을 당한 학교 후배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자라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때까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일본의 젊은 층 대부분은 고바야시를 모르거나 이름만 알 정도인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기자는 약 20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벌써 <게공선>을 숙독했다. 당시 다니던 조총련계 조선학교의 일본어 과목 교재에 실렸던 것이다. 고바야시와 조선인의 관계를 안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서였지만 그런 역사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고바야시 문학에 매혹되었다.

고바야시 문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안이한 해피엔드는 거부하지만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바야시의 작품에서 노동자들이 승리하는 일은 없다. 다만 실패가 거듭되면서도 반항의 씨앗은 끊임없이 뿌려진다. 고바야시의 인생은 그의 문학의 진수를 체현하고 있다. <게공선> 발간 4년 뒤 공안에 체포돼 고문 끝에 학살된 고바야시의 삶은 80년 만에 청년들 마음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가 돼 이제야 완성된 듯 보인다.

김현/ 프리랜스 잡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