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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혁의 니혼진] 시부야를 닮은 남자
정재혁 2009-05-06

시부야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파르코가 모여 있는 언덕 어딘가였는데 분카무라쪽으로 간다는 게 정반대인 오모테산도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워낙 복잡한 곳이라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니 기운이 빠졌다. 왜 나는 항상 가방 속의 가이드를 꺼내지 않는 걸까. 다리가 아파져서야 후회를 하는데 이게 매번 반복된다. 100% 내 잘못인 건 확실한데 여기엔 시부야 탓도 있다. 시부야에선 방향 자체가 흔들리니까. 분위기로 길을 찾는 나에겐 힘들다. 시부야엔 술집도 있고, 레코드 가게도 있고, 클럽도 있다. 책방도 있고, 러브호텔도 있고, 그 바로 옆엔 예술영화 극장도 있다. 똑같이 복잡한 신주쿠는 동서에 따라 동네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시부야는 모든 게 뒤섞여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곤란하다.

나리미야 히로키를 보면서 시부야를 생각했다. 오렌지빛의 머리 색과 금빛이 섞인 초콜릿색 피부. 앞코가 뾰족한 부츠와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길게 늘여 묶은 체크 패턴의 셔츠. 화려하고 화려하고 또 화려한 그는 시부야의 첫인상과 비슷하다. 드라마 <고쿠센> <스태드 업>, 영화 <나나> 시리즈 등 그가 출연한 작품들도 그렇다. 그는 장소가 시부야든 아니든 항상 시부야에 있는 것 같고 시끌벅적할 정도로 요란한 외모는 센터가(하치코 개찰구 앞으로 펼쳐진 X자 모양의 교차로) 어딘가에서 마주친 듯하다. 그는 <나나> 이후 부진했고 올해에 다시 영화를 들고 나왔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라피포>, 미즈시마 히로와 주연한 <드롭>과 오카다 마사키와 함께 출연한 <하프웨이> 등. 그중 <라라피포>는 시부야에서 살아가는 호스트의 이야기다. 반가움과 동시에 시부야에 대한 향수가 일었다.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시부야는 많이 죽었으니까. 나리미야 히로키가 부진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부야는 90년대의 도쿄다. 갸루, 고갸루(흑인처럼 시커멓게 화장하는 여자와 남자)가 시끄러웠던 것 것도 다 90년대 후반이고, 이젠 지유가오카, 기치조지, 에비스, 다이칸야마, 후타코타마야 등 유유자적할 수 있는 동네들이 인기다. 모두 시부야를 지나가긴 하지만 사랑하진 않는다. 도쿄인들은 시부야에 머물지 않는다. <라라피포>가 개봉했던 지난 2월 나리미야의 말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시부야에는 모든 게 다 스쳐 지나가기만 해요.” 센터가의 수많은 인파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그냥 시부야를 거쳐 어딘가로 향한다.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부야는 왠지 정착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외롭고 고독하다. 나리미야가 가끔 내뱉는 적막한 단어들과도 겹친다. 다이칸야마, 에비스에 여유로 즐기는 고독이 있다면 시부야엔 시대가 남긴 씁쓸한 고독이 있다. 하지만 사실 더 진솔한 건 시부야쪽이 아닐까. 나리미야의 영화가, 시부야의 정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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