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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가짜 세상
이화정 2009-05-22

“동대문 상인 무시 말아. 니 아빠도 그 돈 벌어 다 너 유학시킨 거야!” <신데렐라맨>에서 ‘거지’ 권상우는 카피를 등한시하는 윤아에게 이렇게 호통친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지론에 따르면 카피는 곧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드라마가 이렇게 카피의 도덕성을 대변할 지경이니 실제는 더하다.

최근 친구가 핫하다며 귀띔해준 인터넷 의류사이트는 아예 카피를 대놓고 ‘즐긴다’. ‘미우미우’의 땡땡이 원피스와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의 깜찍한 플랫슈즈를 그대로 재현한 솜씨는 못돼도 중국의 가짜 계란 만들기에 버금간다. 아이템에 누구누구의 디자인임을 밝혀놓은 건 기본. 심지어 같은 카피품끼리도 자신들의 제품은 오리지널을 직접 ‘바잉’해 입어보고 그대로 만들어서 더 진짜에 가깝다는 걸 비교분석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허락지도 않은 아이템을 뻔뻔하게도 100% 도용하고서는 제품마다 어디서 배웠는지 ‘Inspired’라는 영어 단어는 꼭꼭 넣는다. 이름 꽤 들어본 디자이너들의 제품은 물론 방콕의 신진 디자이너, 막 주목받기 시작한 액세서리 디자이너의 제품까지 모두 이 사이트의 판매 리스트에 버젓이 올라 있다. 심지어 최근엔 소피아 코폴라가 루이비통과 손잡고 디자인한 소피아 코폴라 백이 국내 시판도 전에 이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약간의 ‘창의성’을 더해 오리지널보다 다양한 색깔을 구비한 채.

디테일한 부분을 구석구석 찍어올린 제품 사진을 스크롤하다보면 정작 코미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각 페이지의 말미에는 어김없이, ‘XXX의 모든 제품 및 사진 사이트는 저작권과 디자인보호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습니다. 무단도용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박혀 있다. 자기들은 실컷 무단도용해놓고 정작 자기 것은 도용하지 말란다. 우습지만 이 사이트의 쥔장은 꽤 유명한 스타일리스트고 아이템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며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오리지널만 입고 다닌다. 화가 나서, 클로에 수석디자이너에게 당장 일러주고 싶다.

물론 제아무리 뛰어난 디테일을 자랑해도, 그게 가짜인 건 며느리는 몰라도 구매한 나는 안다. 그게 가짜의 한계다. 문제는 하도 가짜가 범람해 미처 카피품인 줄도 모르고 사는 지경까지 이른 현실이 사뭇 슬플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