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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칙릿’ 영화 <걸프렌즈 >
주성철 2009-12-16

synopsis 스물아홉살 한송이(강혜정)는 회사동료 진호(배수빈)와 엉겁결에 키스를 하고 난 뒤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직감한다. 몰래 휴대폰까지 뒤져 진(한채영)이라는 옛 여자친구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어린 여자 보라(허이재)까지 만난다. 둘 다 여전히 진호를 사랑하는 상태다. 송이는 두 여자와 뒤엉켜 싸워야 정상일 텐데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낀다.

<걸프렌즈>는 두 남자가 한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아내가 결혼했다>(2008)만큼이나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시작하지만, 그처럼 제도적 현실에서 겪게 될 고통은 그저 가볍게 지나친다. 어쨌건 결혼이라는 법적 관계로 묶인 것도 아니니 이렇게 지지고 저렇게 볶건 무슨 상관이랴. 끝없이 남자친구를 의심하면서 마음 졸이는 것보다 다른 두 여자와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 여자는 급기야 ‘걸프렌즈’라는 모임 이름까지 정한다.

이홍 작가의 동명 원작에서 보듯 <걸프렌즈>의 지향점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칙릿’이다. 성(性)을 둘러싼 걸쭉한 농담부터 현실감 넘치는 코믹한 대사들, 뻔하다며 욕하고 가볍다고 종종 폄하하기도 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매력의 칙릿 소설처럼 <걸프렌즈>도 같은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남자친구 앞에 등장한 새 여자와 경쟁하기 위해 괄약근 운동에 집중하는 친구나, “머리 좋은 년이 예쁜 년 못 이기고 예쁜 년이 팔자 좋은 년 못 이긴다”고 충고하는 주인공 엄마의 모습을 보라. 주의해서 볼 것은 원작에 더해지는 노혜영 작가의 각색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강혜정의 헤어스타일을 보고서, 역시 노혜영 작가가 썼던 <싱글즈>(2003)에서 단발 삐침머리로 등장했던 고 장진영의 단발 삐침머리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한국형 칙릿영화의 계보를 써나간다면 <싱글즈>와 <걸프렌즈>는 그렇게 만날지도 모른다.

오르가슴도 위장할 줄 알고, 술에 취해 조폭들에게 대들 용기도 있으며, 이혼한 엄마에게까지 독설을 퍼붓는 강혜정은 자신이 가진 A부터 Z까지 모두 보여주려는 듯 근래 들어 가장 열연을 펼친다. 배수빈도 의외로 귀엽고 한채영이나 조은지는 물론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최송현도 제법 눈길을 끈다. 종종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배우들이 커버한다. 원작이 별로였다면 영화도 별로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혹은 별다른 정보 없이 본다면 꽤 즐겁게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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