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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호버먼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읽기
2001-12-15

나는 괴인한 꿈을 꾸었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매우 관능적인 환상여행으로서, 데이비드 린치가 <블루 벨벳> 이후, 아니 어쩌면 <이레이저 헤드> 이래 내놓은 가장 강렬한 영화일지 모른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여러 가지들, 즉 자유롭게 떠다니는 협박의 분위기, 영혼들의 요령부득의 이주, 도발적으로 툭툭 잘려나간 채 꿰매진 플롯 등이 여기서는 멋지게 되살아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을 제공하기도 한 바로 그 거리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일어난 급작스런 한밤중 교통사고로 시작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물론 아주 비이성적인 뜻에서 말이다). 린치의 기이한 누아르풍은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끊임없이 사람을 놀라게 한다. 서툰 암살 시도가 진공청소기와 화재경보기라는 엉뚱한 두 희생자를 추가로 낳을 때나, 혹은 분홍과 옥색의 급작스런 폭발과 함께 코니 스티븐스의 <내가 너를 사랑하는 열여섯 가지 이유>(Sixteen Reasons Why I Love You)가 흘러나올 때 등에 말이다.

내러티브는 대개 그렇듯이, 이름이 리타라고 곧 밝혀지는 신비로운 숱 많은 밤색머리 아가씨(로라 엘레나 헤링)가 찌그러진 차에서 총을 발사하며 할리우드 언덕에서 보석 같은 저 아래 도시로 내려가 빈 아파트를 찾으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기억상실증으로 고통받고 있고 덕분에 그녀는 그 아파트 관리인인 베티(나오미 와츠)의 완벽한 파트너가 된다. 딥 리버라는 온타리오 마을 출신의 베티는 리타 다음날 아파트에 도착한, 금발의, 원기왕성하면서 공허하게 낙천적인 여성이다. 베티는 스타라는 꿈을 향하여 순진할 정도로 탐욕스럽게 매진한다. 리타는 이런저런 환경에 의해 스타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영화는 여러 가지 미스터리들을 담고 있다. 돈으로 가득한 리타의 손가방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녀 주머니의 푸른 열쇠는 무엇을 뜻하는가? 순진하게 믿고 있으며 언제나 의욕에 차 있는 베티가 리타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할 때 거기엔 분명히 낸시 드류적인 냄새가 난다: “영화에서랑 똑같은 거야. 우린 누군가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거야.”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베티가 오디션에서 해낸 선정적인 연기는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 할 모든 행동이 다 어떤 효과를 위해 계산된 것들이었을지도 모름을 보여준다. 리타가 베티를 더욱 닮게끔 거의 개조에 가까운 변화를 취하자 베티는 “넌 이제 딴사람 같아!” 하며 감탄한다. 새 금발 가발에 일부 힘입어, 그녀들은 예외적으로 후끈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섹스 조크를 담은 대화를 나누는 신으로 함께 돌입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가장 무서울 정도로 스스로를 되반사하는 신은 베티와 리타가 클럽 실렌시오라고 불리는 낡고 버려진 한 영화 궁 근처에서 벌어지는, 새벽 두시의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초점이 되는 미스터리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싱크로나이제이션, 즉 시네마로서, 그리고 그 환각은 베티를 경련으로 몰아넣는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레베카 델 리오는 스페인어 아카펠라 버전으로 “크라잉”을 부른다. 그녀는 곧 무대 위에 쓰러지지만, 노래는 영화처럼 계속 흘러나온다. 나머지 45분 동안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내러티브에 있어 브뉘엘만큼이나 괴팍하고 억류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린치가 그의 특정한 페티시들을 통해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낸 풍미는 바로 초현실적인 색채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의 제멋대로 방종을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어떤 한계점 너머까지 밀어붙이는 신념을 발휘한다.

영화는 갈수록 더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베티와 리타가 클럽을 나서면서부터, 내러티브는 금가기 시작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한 상황으로부터 다음 상황으로 그저 흘러들어가고, 한 신으로부터 또다른 신으로 스며들어간다. 마치, 내가 미처 말하기 잊었지만 실은 이야기 전체의 중심에 있는 그 썩어들어가는 시체처럼. 캐릭터들은 증발해버린다. 세팅도 사라져버린다. 상황들은 무너지고 다시 스스로를 새로 세운다. 때론 판타지처럼, 때론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되 방법만 달라지는 그런 영화처럼. 사랑은 이제 퍼포먼스가 된다. 리타는 팜므파탈형으로 돌아온다. 어버이 같은 악마들이 되돌아온다.

베티의 꿈이 악몽으로 변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전의 이야기 자체가 꿈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전율적이고 우스꽝스럽다. 이 영화는 온전히 본능에 따른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침묵일 뿐이다. 짐 호버먼/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 ▶ <멀홀랜드 드라이브>, 악몽의 린치 타운

▶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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