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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를 만나는 당신의 주문, 뽀로뽀로미! [2]
주성철 2010-06-17

<월광보합>: 가슴 뭉클한 사랑을 위한 워밍업

<킬 빌> 1, 2편의 구조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서유기1: 월광보합>(이하 ‘<월광보합>’)과 <서유기2: 선리기연>(이하 ‘<선리기연>’)은 1995년 만들어졌으며, 현대물과 사극 모두를 정복한 주성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점핑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서유기>의 팬이었던 유진위 감독이 주성치와 함께 익숙한 중국 3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의 기존 형식과 내용을 완벽하게 해체하면서 전혀 새로운 희비극(喜悲劇)의 세계로 완성했다. 주성치의 작품 중 <희극지왕>과 더불어 가장 가슴 아픈 멜로드라마가 바로 <서유쌍기>다.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주성치의 가장 슬픈 얼굴이 여기 있다. 주성치가 유진위의 출연제의에 가장 망설였던 이유도 자신의 멜로영화가 관객에게 먹힐까, 하는 점이었다. 당시 그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파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월광보합>도 여느 주성치 영화처럼 배꼽 잡게 만드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부적 때문에 자기들이 안 보이는 줄 알고 알몸으로 훌라춤을 추는 주성치와 오맹달의 능청스러움, 거시기에 불이 붙었을 때 그곳을 마구 짓밟아 불을 끌 수밖에 없는 주성치의 눈물은 그들의 고통만큼 관객을 웃게 만든다.

<월광보합>에서 관세음의 벌을 받은 손오공(주성치)은 500년 뒤 오악산 산적무리의 우두머리인 ‘지존보’로 태어난다. 당삼장(나가영)과 함께 서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그를 먹으면 불로장수한다는 우마왕의 말에 현혹돼 당삼장을 죽이려 했기 때문. 그러던 어느 날, 당삼장을 찾아 다니는 춘삼십낭(남결영)과 백정정(막문위)이란 요괴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인간으로 환생한 지존보는 전혀 기억을 못하지만 500년 전 그가 손오공이던 시절 백정정과 연인 사이였다. 다시 만난 백정정은 뼛속 깊이 자신을 버렸던 손오공을 증오하고 있는 상태. 이후 우마왕까지 나타나 요괴와 결전이 벌어지는 사이 지존보와 백정정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부두목 이당가(오맹달)도 춘삼십낭의 실수로 인해 사랑에 빠져 둘의 아이를 갖게 된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자신이 손오공이란 사실을 알게 된 지존보는 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월광보합을 찾아 자살하기 직전의 백정정을 살리려 한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만 50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고 백정정의 스승이기도 한 반사대선 자하(주인)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 <월광보합>은 <선리기연>의 가슴 뭉클한 사랑의 아픔으로 나아가기 위한 워밍업 같은 작품이다. 마치 오우삼의 <적벽대전> 연작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기 직전의 1편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여느 주성치 영화의 패러디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익숙하게 펼쳐진다. <서유쌍기>가 그 자체로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에 대한 패러디라면, 첫 장면부터 낡은 모자에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모래언덕 너머 지나가는 사람을 엎드려 바라보는 산적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동사서독>의 구양봉(장국영)과 홍칠(장학우)을 연상시킨다. 다른 여자 때문에 내 여동생을 버렸다며 황약사(양가휘)를 죽여달라고 구양봉을 찾아온 모용연(임청하)의 1인2역 또한 춘삼십낭과 백정정을 떠올리게 한다. 지존보가 가끔씩 꿈속에서 목격하는 파도의 풍경도 <동사서독>과 닮았다. 이처럼 <월광보합>은 <동사서독>의 비장한 음악을 가져온 것은 물론 노골적으로 그런 디테일들을 드러내는데, 실제로 왕가위와 그저 평범한 코미디감독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유진위는 무명 시절 함께 시나리오를 썼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홍콩영화인 사이에서도 가장 의아해하는 관계랄까. 비슷한 시기 <동사서독>의 배우들이 거의 모두 유진위의 <동성서취>(1993)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선리기연>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진위의 야심은 왕가위 못지않다. 일단 주성치 영화 중 공간의 집중도가 이처럼 강한 작품은 드물었다. 춘삼십낭과 우마왕이 싸우고 백정정을 살리려고 손오공이 노력하는 장면이 거의 한 세트 안에서만 촬영됐음은 물론, 커다란 시간 여행을 하기에 앞서 거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도 긴장감을 자아낸다. 포도로 둔갑해 등장했다가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퇴마사 보리노조로 등장한 덩치 좋은 배우가 바로 유진위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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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리기연>: 패러디의 반복, 원작 못지않은 카타르시스

<선리기연>에서 500년 전으로 이동한 지존보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된다. 자하는 평소 자청보검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낭군이 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지존보가 우연히 별 힘 안 들이고 자청보검을 뽑는 것을 본 것. 문제는 500년의 시간 이동을 하면서 뚝 떨어진 월광보합을 주인이 가로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정정을 살리기 위해 월광보합을 뺏어야 하는 지존보는 거짓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지존보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 자하는 떠나고 지존보는 자하를 찾아온 백정정을 다시 만난다. 500년 전의 백정정은 둘 사이를 알 리 없으니 지존보는 앞으로 그들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될 거라며 한참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백정정 역시 지존보의 마음이 자하에게 기울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뽀로뽀로미’는 바로 시간 이동을 하려는 주성치가 달빛 아래 월광보합을 들고 외치는 주문이다. 힘들게 주문을 외치며 <롤라 런>(1998)처럼 무려 4번이나 재시도를 거듭해 백정정을 살리려 했으니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만난 백정정 앞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사실 우리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마구 옷을 벗기며 서로를 탐하려 했던 기억 등 <월광보합>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리노조와 함께 재연하며 하이라이트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형환영대법으로 저팔계와 주인의 몸이 바뀌고, 우마왕의 여동생과 사오정의 몸이 뒤바뀌는 설정도 폭소를 자아낸다. 오맹달이 연기하는 저팔계에게 키스하려다 구역질을 하고 마는 주성치의 고통이라니!

하지만 이내 <선리기연>은 <월광보합>에서 못다 한 임무를 완수한다. 원작의 손오공이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삼장법사와 여정을 함께하는 인물이었다면, 유진위는 손오공에게 감정을 부여했다. 머리에 금강권을 쓰고 어렵사리 속세의 사랑과 인연을 끊고 길을 나서는 손오공의 슬픔이 거기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사서독>뿐만 아니라 <중경삼림>(1994)까지 끌고 들어온다. <중경삼림>에서 점프컷으로 임청하와 마주쳤던 금성무의 기억처럼 “그때 검과 내 목과의 거리는 0.01mm밖에 되지 않았다”라거나 “만약 사랑의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라는 등 주성치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오리지널인 양 천연덕스레 원작의 대사를 읊는다. <동사서독>에서 자애인(장만옥)은 구양봉이 자기를 잊어주길 바라며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구양봉은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복사꽃은 <서유쌍기>의 지존보도 들고 있다. 무려 500년의 시간을 이동하다보니 그 번뇌의 두께는 구양봉보다 지존보가 더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패러디를 반복하고 또 더하는 가운데 원작의 감흥 못지않은 카타르시스에 다다르는 놀라운 경험이다. <동사서독>에서 과거의 기억을 지워준다는 취생몽사라는 술은 농담이지만 그를 패러디하는 주제(!)에 <선리기연>은 그걸 진담처럼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진짜 취생몽사를 마시고 떠난 사람은 구양봉이 아니라 지존보일지도 모른다. 유진위와 주성치의 <서유쌍기>는 < A Chinese Odyssey >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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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신두영 디자인 : 원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