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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속적 인습과 오컬트 무비의 합종 교배 <페티쉬>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음산해 보이는 미국의 어느 부유한 마을. 숙희(송혜교)라는 젊은 여인이 한국계 미국인 피터(롭 양)의 아내가 되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다. 둘은 얼마 전 중매결혼으로 만나 아직 좀 서먹한데, 피터의 어머니가 그들 사이를 더 불편하게 한다. 숙희는 피터의 친구이자 옆집 이웃이기도 한 존(아노 프리시)과 줄리(애시나 커리) 부부와 곧 친해진다. 숙희는 자신의 미국 이름도 줄리라고 짓는다. 하지만 피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숙희가 무속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교민이 이 집안에 나쁜 일들이 벌어지는 게 전부 그녀 때문이라고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뒤이어 시어머니까지 자살하자 숙희는 옆집 부부에게 마음을 의탁한다. 아니, 접근한다.

<페티쉬>의 어떤 장면들은 아주 섬뜩한 분위기를 갖췄다. 예컨대 영화의 라스트신에서 줄리의 정체를 밝힐 때 사용한 장치와 그 분위기는 적어도 한국 관객에게는 오싹함을 안길 만하다. 그만한 장면이 흔치 않다는 게 이 영화의 문제다. 한눈에 들어오는 잘 포착된 앵글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물과 장면들을 조율하고 매듭짓는 과정은 어딘가 어색하다. 혹은 정적인 영화적 품위와 느슨한 영화적 무력함을 어딘가 오인하고 있다. 팜므파탈이라는 공공연한 영화적 도상을 교량 삼아 한국의 무속적 인습과 오컬트 무비라는 미국영화의 장르적 대중성을 합종 교배하고자 한 야심찬 시도가 엿보이지만 그 시도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낳진 못했다. 한편으론 송혜교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소문나 있는데, 그보다는 미국 인디영화계에서 활동하는 한국 유학생 출신의 감독과 경험 삼아 이곳에 뛰어들어본 한 한국 여배우의 만남이라고 말하는 쪽이 더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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