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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 매력적인 인간 되기가 우선이지
정리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1-05-12

배우 박중훈과의 토크쇼 현장

박중훈의 연기수업’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풍경일까. 4월21일 CGV상암에서 주성철 기자의 진행으로 열린 <씨네21> 토크쇼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배우 박중훈이었다. “무대 앞에서 저와 박중훈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워준 만큼 바로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질 거”라는 주성철 기자의 말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한국영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 정곡을 찌르는 질문 등 모두 환영한다”는 박중훈의 말처럼 토크쇼는 ‘중구난방 박중훈쇼’로 빠질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연기에 관한 진지한 질문들이 다수 쏟아졌다. 그러니까 이번 토크쇼는 ‘연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박중훈의 대답인 셈이다.

질문을 받기 전 박중훈은 관객과 함께 자신의 출연작 <해운대>(2009)의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그가 연기한 김휘 박사가 쓰나미의 위협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딸이 있는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수중촬영 세트장에서 찍은 장면이다. 그 한신 찍는 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 수압이 얼마나 강한지 물을 맞는 순간 호텔 복도 끝까지 밀려났는데 전문 스탭 다섯명이 겨우 나를 잡을 수 있었다. 또 세트장 주변에서 큰 소음이 나기에 뭔지 알아봤더니 옆 세트장에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을 찍고 있더라. (웃음)” 그리고 김휘 박사가 국제해양연구소 지질학자라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전문용어 위주의 대사를 해야 했던 고충도 털어놨다. “쓰나미가 시속 300km로 수면 어쩌고저쩌고…. 이런 (전문적인 용어로 이루어진) 대사를 롱테이크로 하려니까 정말…. 그것도 영화가 블록버스터라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긴박하게 해야 했다. 밤새 마흔번 넘는 NG 끝에 겨우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그 자리에 있던 엑스트라 분들이 막 박수치고. 부끄러워서 혼났던 기억이 난다. (웃음)”

궁극적으로 연기는 가르칠 수 없는 것

올해로 연기 인생 27년째인 박중훈이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우선시하는 건 크게 시나리오와 감독이다. “먼저 선택이라는 말을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작품을) 선택한다는 건 배우가 잘나갈 때 가능하다. 못 나갈 때는 ‘선택’을 할 수 없다. 그저 작품이라도 들어와라, 는 심정이다. 일단 내가 좋은 상황임을 가정하자. 가령, 감독이 90점, 시나리오가 80점인 작품이 1번. 시나리오가 90점이고 감독이 80점인 작품이 2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1번을 택할 거다. 또 감독이 90점이고 시나리오가 70점인 작품이 1번. 감독이 70점이고 시나리오가 90점인 작품이 2번. 이때는 2번을 택한다. 물론 감독과 시나리오가 모두 90점 이상인 작품을 하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독이다.”

지금까지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출연 제안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영화만 고집하는 박중훈만의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다. “성우를 ‘보이스 액터’, 연기자를 ‘스테이지 액터’, ‘무비 액터’, ‘텔레비전 액터’라고 부른다. 모두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 다만 선호도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객이) 배우들의 하나하나를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영화배우 하면 안성기, 박중훈이 먼저 떠오른다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

박중훈이 생각하는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배우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버리고 타인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연기라는 건 타인이 됐다고 가정하고 하는 거다.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등 그간 맡은 캐릭터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실제 내 모습이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타인이 필요하면 배우 캐스팅이라는 게 왜 필요하겠나. ‘적역’이라는 말도 배우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김갑수나 송강호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했던 역할을 맡았다면 20대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까.”

매력적인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직접적인 경험을 쌓는 것과 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박중훈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움직이며 웃어 보인다) 표정은 입, 하관에서 나온다. 반면 생각과 감정은 눈에서 나온다. 88만원 세대를 이렇게 만든 저도 공범이고, 20대에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고, 또 분노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극중 정유미를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오동철 역할을 표현할 수 있었다.” 연기의 테크닉은 필요하지 않냐고? 박중훈은 “한두편 해본 신인들이나 수십년 동안 연기한 베테랑 배우나 테크닉은 똑같다”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극과 과학이 만난 게 영화다. 영화연기를 할 때는 포커스, 조명 등 기술적인 면을 염두에 둬야 할 때가 있다. 가령, 키스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하자. (보통 속도로) 이렇게 키스를 하면 화면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슬로 모션으로) 그래서 이렇~ 게 가야 한다. (웃음)” 그러나 그는 “테크닉은 연기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연기라는 건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한 말을 인용한다. “영화감독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박중훈은 그간 수많은 여배우와 함께 작업을 했다. 다음 작품에서 함께하고 싶은 여배우는 없을까. “총각 때 예쁜 여자들과 연기를 하면 가슴도 설렜는데, 결혼한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안 생기느냐, 그건 아니고 오히려 더 간절해진다는…. (웃음) 그런 건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예민하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좀 무덤덤한 사람이 상대역이었으면 한다.” 어떤 배우들은 또 언제 노출연기를 해보겠느냐고 옷을 벗곤 하는데, 박중훈 역시 노출연기에 뜻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노출연기는 200% 못할 것 같다. <우묵배미의 사랑>(1990) 때 수치감 같은 것을 느꼈다. 프로로서 옳은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다만 과감하게 벗어서 캐릭터를 잘 소화한 배우한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좋은 영화 살리려면 개봉 첫주에 영화 보길

오랫동안 관객과 호흡해온 배우 박중훈이 생각하는 좋은 관객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좋은 관객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다. 영화를 스포츠에 비유하면 골프라고 생각한다. 축구, 배구, 야구, 농구 등 움직이는 공을 치는 대부분의 구기종목과 달리 골프는 죽어 있는 공을 띄우는 운동이다. 감독, 배우, 스탭들은 관객의 감정을 두 시간 안에 띄워야 한다. 한국영화를 봐주자, 는 말을 싫어한다. 아닌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야 (제작자들이) 다시는 그렇게 안 만든다. 또 영화는 유통기한이 있다. 극장은 굉장히 냉정하기 때문에 첫주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내린다. 좋은 영화를 볼 거면 가급적이면 개봉 첫주 혹은 개봉일에 가깝게 보는 것이 그 영화를 사랑하고 살리는 방법이다.”

토크쇼가 거의 끝날 무렵 함께 자리한 <내 깡패 같은 애인>의 김광식 감독은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재능 이상으로 운과 인연이 중요하다. 좋은 감독이 되는 것보다 감독이 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웃음)”고 대답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씨네21>의 오랜 친구답게 배우 박중훈과 <씨네21> 독자는 약 2시간 동안의 토크쇼를 통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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