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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를 꿈꾼 적 있나 - 조민환
2001-03-12

싸이더스 영상사업부문 공동부문장·<8월의 크리스마스> <태양은 없다> <무사>

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로 입문했나.

국문과를 졸업한 뒤 영등포 노동자문학회 활동을 하다가 광고회사에 들어가 카피라이터 일을 했다. 글 쓰겠다는 생각으로 쉬던 중 어느 날 친구가 ‘영화 안 해 볼래’ 하고 제안을 했다. 해서 기획, 홍보사였던 영화기획정보센터에 들어가 마케팅을 담당했다. 당시가 90년이었을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마지막으로 이화예술필름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시 기획시대에 들어가게 됐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청바지처럼 꽉 끼는 포르노그라피’라는 카피를 뽑아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한 뒤 유인택 대표에게 제작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케팅은 너무 무시당하는 분위기였고, 내가 영화에 대해 기술적으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꼬리치는 남자>의 제작 총지휘를 맡게 됐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했다. 당시 충무로의 풍토를 너무 몰라 제작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했고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도 만들지 못했다. 많은 반성을 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당시 우노필름 대표였던 차승재 싸이더스 부사장이 나를 불렀다. <씨네21> 구정 만화란에서 허영만의 <비트>에 대한 소개를 읽고 영화화하자는 제의를 했다. 김성수 감독과 <비트>를 만들면서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해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 이후 <태양은 없다> <플란다스의 개>의 프로듀스를 맡았고 <시월애>를 절반쯤 진행하다 지금의 <무사>를 제작하고 있다.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지라고 떠올린 영화가 있다면.

단군신화. 서양의 경우 신화, 마법 등을 소재로 영화를 많이 만들지 않나. 그리스·로마신화도 자주 이용되는 것 같다. 중국에도 무협이라는 신화 비스름한 게 있다. 하지만 우리 영화가 우리 고유의 원형신화를 재현해본 적이 있나. 물론 픽션을 섞어서 만들겠지만 장대한 우리의 유산을 되살려보고 싶다. 4부작 정도의 커다란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생각하며, <무사>를 찍으며 이 프로젝트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왜 프로듀서를 하는가.

프로듀서로서의 재미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영화보는 재미는 잃어가니까. 영화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프로듀서 생활을 통해 ‘영화는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찍히고, 인간과 만난다’는 나름의 명제를 정리했다. 영화는 스탭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속에 등장하는 것은 배우이고 이는 관객이 즐김으로써 완성된다. 매일같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작업이 이뤄진 <무사>를 하면서 스탭과 배우들에게서 우정, 열정, 끈끈한 관계를 맛봤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나 사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빨리 자리를 잡았고 인정도 받았다. <꼬리치는…>을 제외하곤 흥행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프로듀서 개인으로 보면 <플란다스…>도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비평적으로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무사> 작업이 과정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고 내 역량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것만은 고치겠다고 생각한 충무로 관행은.

사실 나는 처음 영화판에 들어왔을 때 할리우드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실패, 그뒤 충무로 시스템을 몸으로 익혔던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할리우드에 맞서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비합리성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촬영일수가 넘치거나 하면 제작이 아예 안 되거나 엄청난 비용을 스탭한테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감독이 구상이 안 된다는데…’ 하면 스탭이 감내해준다. 여기에서 자유로움, 넉넉함, 여유 등이 생기는 것 같다. 하나 있다면 ‘전문연출부, 제작부 제도’를 도입하고 싶다. <무사> 때 중국에 갔더니 60대 노인이 제작부 막내를 하고 있었다. 이분은 그 지역의 로케이션 정보만큼은 완전히 꿰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 연출부는 감독으로 가는 길이고 제작부는 프로듀서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다르므로 그만한 재능이 없을 수 있다. 만일 그가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영화계를 뜨는 수밖에 없다. 그 노하우가 사장되는 것 아닌가. 나 같으면 잘 단련된 조감독이 있다면 최소한 3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

나의 스승, 나의 교범은.

영화쪽 스승은 아무래도 차승재 부사장이다. 차승재가 영화판의 큰 물줄기를 가르쳐줬다면 디테일을 가르쳐준 사람은 김성수 감독이다. 그에게서 프로듀서가 지향하고 견지해야 할 자세를 배웠다. 교범? 없다. 예전에 <영화의 이해>를 두 페이지 못 넘기고 덮었다. 그리고 충무로 사람들과 만나 영화를 보면서 저건 어떻게 찍는 거야, 이런 식으로 물어가며 몸으로 배웠다.

3세대 프로듀서들이 해야 할 일.

우선 내가 제3세대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판에 들어온 게 벌써 11년째다. 어찌됐든 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위상에 관한 이야기라면, 함께 분류된 분들과 연대의식이나 교류가 없어 ‘우리’가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각자가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콩영화계가 왜 파산을 맞이했나. 장르 파먹기에 열중하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들은 쿵후면 쿵후, 누아르면 누아르, SF무협이면 또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실험적인 모색을 하지 않았다. 유행 등에 연연하지 않고 각자 찍고 싶은 것을 찍었으면 좋겠다.

지금 준비중인 작품.

5월 개봉예정인 <무사>를 준비중이다. 현재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50억원 넘는 예산이 들었고 4천컷을 찍었다. 얼마 전 이 컷들을 다 붙여보니 딱 네 시간이 나오더라. 지루하지 않게 2시간30분 정도에 맞출 계획이다. 그러면 하루에 4회밖에 상영 못하지만 완성도를 떨어뜨려가며 2시간에 맞출 수는 없다. 우리 영화가 지루하다는 소문이 났다는데 솔직히 인정할 순 없지만, 그런 소문이 더 퍼졌으면 좋겠다. 관객이 큰 기대감 없이 영화관을 찾았다가 막상 영화를 본 뒤 깜짝 놀랄 수 있도록 말이다. 필름을 30만자나 찍었더니 후반작업이 너무 힘들다. 김성수 감독은 하루에 네 시간도 못 잔다. 이달 말까지 편집을 마치고 호주에서 사운드 작업한 뒤 음악녹음을 위해 폴란드, 런던, 도쿄를 분주히 오갈 계획이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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