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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인간과 영화는 시간과 어떻게 조응하는가

칸영화제 중반까지의 분위기…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한 질문 던지는 영화들 돋보여

<문라이즈 킹덤>

초반에는 실망스럽거나 평범한 영화들이 다수였고 이제 중반에 이르자 서서히 진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들어 매년 칸영화제가 반복하고 있는 현상이다. 균형감에 지나치게 얽매인 라인업, 그러다보니 동반되는 얼마간의 수준 저하, 그리고 거장의 작품들은 여전히 훌륭한데 신진은 발견되지 않는 그 간극, 그런 점들 때문에 생기는 무료함 등이 티에리 프레모 시대의 칸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인다. 그러니 매해 아주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훌륭하지도 않다는,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하여간에 작품에 관해서라면, 올해의 라인업을 두고 프랑스 문화지 <인록>이 한 가지 경향을 제시했다. “많은 영화(<트리 오브 라이프> <멜랑콜리아> 등)가 형이상학적 질문을 선택한 건 지난해의 경우일 뿐, 다른 해에는 늘 국제정치 이슈가 칸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런데 올해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시간과 어떻게 조응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주요 작품들의공통 질문이다.” 그리고 <문라이즈 킹덤> <파라다이스: 사랑> <아모르> 등을 그 예로 꼽았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이런 거대 경향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여러 개의 작고 유동적인 범주들을 제시하고 또 변경해가며 영화 사이를 돌아다녀보자. 그게 올해 칸영화제를 보는 우리의 방식이다.

<문라이즈 킹덤>의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감독 웨스 앤더슨(왼쪽부터).

로우예는 과대평가받았던 것일까, 정녕

개막작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은 작품 자체가 하나의 계열이다. 쾌활하고 부담도 없지만 동시에 세련되고 고집도 있어 보이는 이 영화는 개막작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탈출한 소년 샘과 답답한 집을 탈출한 소녀 수지. 둘은 자신들만의 도피처에서 은밀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소년 소녀의 실종에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어른들은 두 아이를 찾아 나선다. 자기 나이보다 훨씬 덜떨어져 보이는 어른들이 자기 나이보다 훨씬 더 조숙해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웨스 앤더슨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들이었는데 이번의 주인공들은 그 반대다. 물론 그 때문에 잃은 영화적 재미가 있지만, 그렇다 해도 <문라이즈 킹덤>은 즐겁고 귀엽다.

추락한 감독과 과대평가받은 감독의 명단도 보인다. 한때 지아장커와도 어깨를 겨루며 중국영화의 신예로 평가받았던 로우예의 신작 <미스터리>는 매우 뛰어난 치정극 한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의아할 정도로 그 구조에만 집착하여 허망한 영화 한편이 되고 만다. 그의 실패가 우리에게는 미스터리다. 한편 이탈리아와 루마니아영화의 대표 주자로 각각 손꼽혀온 마테오 가로네와 크리스티안 문주는 확실히 지나치게 과대평가받은 경향이 있다. 마테오 가로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나폴리의 생선장수가 어떻게 미쳐가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망상의 판세가 너무 일찍 결정나 싱겁다. 크리스티안 문주의 <비욘드 더 힐>은 한 광신도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세히 보여주며 상식과 신앙의 좁힐 수 없는 거리, 결코 해결되지 않는 세상의 어떤 문제, 그걸 해결하려는 어긋난 시도 등의 문제를 다룬다. 이 영화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그러했듯이 어떤 (사회적 혹은 종교적) 컨셉을 정한 다음 그걸 밀어붙인다. 그러나 그 방식이 마치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하게 반복하는 실력 없는 이야기꾼의 그것과 같아서 보는 이를 질리게 한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 세 작품 이외에 다른 작품들을 칸이 가져왔더라면 어땠을까. 예컨대 테렌스 맬릭의 <장례식>,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 왕가위의 <일대종사>.

짜임새 있는 어떤 통속극들이 앞선 말한 작품들의 예술적 실패보다 나을 수도 있다. 국내에는 <예언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이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통속극 중 가장 강렬하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따르면 이 영화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로랑 캉테 등의 강력한 적수들을 물리치고 경쟁부문에 진입한 영화인데, 역시 힘이 좋다. 돌고래 조련사로 일하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자와 착하지만 거의 무뇌아 수준의 반건달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좌절과 희망을 너무 단순화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일단 매 장면이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으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킬 줄 아는 재주가 있다. 칸이 노리는 대중성의 잣대로 삼을 만하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놀랄 만한 뉴스, 켄 로치는 유머의 장인이었다!

의외이겠지만 <러스트 앤 본>보다 더 통속적이고 더 대중적 재미를 지닌 영화가 실은 켄 로치의 <앤젤스 셰어>다. ‘앤젤스 셰어’ 라는 말은 위스키나 와인을 숙성하는 과정에서 소량이 저절로 휘발되는 것을 두고 천사가 슬쩍 가져가 마신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어쩌다 폭력 전과자가 된 로비는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 우연히 양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어떤 값비싼 술통의 술을 아주 조금 슬쩍 하기로 한다. 사회봉사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그는 술을 훔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고는? 이 영화의 제목이 결과를 말해준다. 술통의 술이 약간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정말 새로이 거듭나는 데 쓰인 것이라면 그것 또한 ‘앤젤스 셰어’인 셈이다. 켄 로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재능은 그가 할리우드의 어떤 로맨틱코미디도 구사하기 어려운, 이미 다 아는 결론이지만 거기 닿을 때까지는 충분히 즐겁고 감동하게 되는, 그런 재치와 유머의 장인이라는 데 있다.

희망적인 엔딩과는 거리가 먼, 폭력과 죽음(사랑)에 관한 어둡고 냉혹한 성찰을 시도하는 극단주의자들인 토마스 빈터베르그와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가 통속극의 너머에 있다. 먼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사냥>. 유아원에서 선생으로 일하는 루카스. 이 남자를 좋아하는 네다섯살짜리 꼬마 여자아이가 사건을 만들고야 만다. 루카스의 사랑을 원하는 이 아이가 순진하고도 무서운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거짓말을 한다. 어른들은 그 아이의 말의 ‘뉘앙스’만 듣고 루카스의 유아 성추행을 의심한다. 이제 일은 말도 못하게 꼬여간다. 루카스는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만다. 사람은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도 죄인이 되는가. 이 역설적 도덕의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장치가 여전히 불편하다. 한 가지, 이 영화를 가장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블랙코미디로 인식하는 것이다. 선과 악에 관한 잔혹한 농담으로.

<엔젤스 쉐어>

영화제 중반까지 별점 부문 최고작을 기록하고 있는 미하엘 하네케의 <아모르>도 이런 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하네케는 쇼크도, 내기도, 게임도 하지 않는다. 음악교사였던 80대 노부부, 그들은 단둘이 살고 있다. 음악회를 다녀온 다음날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가 갑자기 이상하다. 곧 아내는 반신불수가 되고 점점 정신도 흐릿해진다. 하지만 “다시는 병원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위해 홀로 남은 남편은 극진한 간호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홀로 남은 남편의 괴로움도 점점 더 심해진다. 하네케는 예의 게임 걸기 방식이 아니라 장 루이 트랭티냥과 에마뉘엘 레비라는 프랑스의 두 전설의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며 이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다리우스 콘쥐가 잡아내는 카메라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실내에만 머무르며 말라가는 생명의 분위기를 잡아낸다. 역대 하네케의 영화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 이 영화는 하네케의 가장 슬픈 영화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마이크 리는 노부부의 한쪽이 본격적인 치매 상태에 들어가기 직전에 영화를 끝냈다. 하네케의 <아모르>는 마이크 리가 멈춘 그다음의 일들을 영화로 만든다. 하네케가 변했다고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당장의 판단이 아니라 얼마간의 생각을 더 요구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에게 올해 영화제 중반까지 당신들의 최고작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홍상수의 <다른나라에서>와 알랭 레네의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한국영화라는 이유로 구태의연하게 홍상수를, 거장이라는 이유로 알랭 레네를 꼽은 것이 아니다. <다른나라에서>에 관해서라면 이 자리에서는 짧게 말하는 게 좋겠다. 이후에 이어지는 영화에 관한 현지의 극찬들을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그 감상과 의견에 우리는 동의한다. <다른나라에서>는 거듭 ‘아름다움’이라는 문제를 질문하게 한다. 그렇게 질문하여 끝끝내 성취해내고 마는 어떤 해방감과 초연함이 이 영화에 있다.

<아모르>의 주연배우 에마뤼엘 레비와 장 루이 트랭티냥(왼쪽부터).

지금까지의 최고작은 홍상수와 알랭 레네의 영화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좀더 길게 말하는 게 좋겠다. 알랭 레네가 공로상을 거부했으며 경쟁에 넣어주지 않을 거라면 이걸 들고 베니스에 가겠다고 칸영화제쪽에 엄포를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한 노감독의 힘없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유의 찬란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경쟁작에 오른 보통의 작품들에 비한다면 미학의 수준부터 다르다.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화로 전해진다. 연극 연출가 앙트완느 오투악의 사망 소식이다. 전화를 받는 사람들은 전부 배우들, 그와 오래전에 <에우리디스> 연극을 같이 했던 배우들이다. 그 연출가의 유언으로 이 배우들이 어떤 성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은 망자가 남긴 어떤 영상을 본다. 거기에는 연극 <에우리디스>을 새롭게 번안한 요즘 젊은 배우들의 연극이 담겨 있다. 이제 자기의 시대를 접은 노년의 배우들은 옛 생각에 젖어 영상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훈수를 둔다. “에이, 저건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 하는 식으로. 그러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자신들도 모르게 모니터 속에서 연기하는 젊은 배우들의 연기에 상대를 한다. 가령 영상 속의 아버지를 맡은 젊은 배우가 대사를 하면 그 옛날 아들을 연기했던, 지금 모니터를 보고 있는 늙은 배우가 화답을 한다. 이런 형세는 점점 더 확장되고 이제 모니터와 응접실과 지금 저 촬영된 젊은 배우들과 지금 그걸 보는 늙은 배우들 사이에 차이가 사라져 완전한 환상으로 빠져들고 예술과 삶의 거리를 질문하게 한다. 혹은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이토록 신선한 예술적 형식의 힘으로 자신의 다가올 죽음과 지나온 과거를 껴안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한 <리베라시옹>의 찬미에 동의한다. “레네의 영화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보기 드문 당돌함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거기에서 어떤 애가도 끌어내지 않는다. 알랭 레네는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멋지게. 우리 모두처럼 그렇게. 가능한 한 늦게.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무엇으로 남을 것이다.”

올해의 칸영화제는 유년의 귀엽고 독특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창의적일 줄 아는 한 노년의 예술품과 함께 이 중반의 고개를 넘고 있다. 이후에는 어떤 영화들이 또 이 영화제를 존재케 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약간의 명단.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21세기 최고작”(<카이에 뒤 시네마>)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 레오스 카락스의 부활을 알릴 것이라는 <홀리 모터스>, 극영화로 돌아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라이크 섬원 인 러브>, 뉴질랜드의 신성 앤드루 도미닉의 <킬링 뎀 소프틀리>, 논란이 예상되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테네바라의 빛 이후>, 지난해 비평가 주간 최고 화제작으로 단숨에 경쟁부문에 오른 제프 니콜스의 <머드>, 그리고 임상수의 <돈의 맛> 등이 우리에게 이제 또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

<아모르>

말말말 “사랑은 오후 3시에?!”

★“이런 영화를 ‘예술영화’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가 뭐더라? 진짜진짜 긴 시간 일하고 돈 안 주는 영화? 어쨌든 여기 칸영화제까지도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왔다. 어디 협찬받은 것도, 빌린 것도 없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내 옷이다.” _개막작 <문라이즈 킹덤>에 출연한 빌 머레이, 감독 웨스 앤더슨과의 오랜 인연을 어떻게 이어왔냐는 질문에 대해.

★“수많은 여자들이 극장 입구에서 나를 향해 ‘<사랑(Amour), 오후 3시>’라고 쓴 종이를 흔들어댄다. 머리에 젤 바르고 오길 잘했다.” _프레스센터에 있던 한 기자. 관객이 미하엘 하네케의 <사랑>의 티켓을 받으려고 애쓰는 걸 보고.

★“더이상, 모터, 액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더이상 모터가 안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 모터 대신 파워!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것은 가짜 권력이다.” _경쟁작 <홀리 모터스>로 참석한 레오스 카락스. 이제 모든 영화가 디지털로 이루어진다며. (프랑스에서는 ‘카메라, 액션’ 대신 ‘모터, 액션’이란 구호를 쓴다.)

★“칸에서 브래드 피트 인터뷰가 그러니깐 1분에 125유로란 말이지. 그럼 블로잡은 얼마냐?(미안한데, 근데 진짜 왓 더 퍽이잖아!)” _칸에 참석한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게 된 한 프리랜서 기자.

★“난 내 영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한, 이스라엘에 판매되는 걸 원치 않는다. 이집트인들이 억압적인 군부독재 체제로부터의 해방의 첫 발걸음을 떼려 노력하려는 이 시점에서, 그들이 우리 해방의 동맹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_경쟁작 <애프터 더 배틀> 기자회견 중 이스라엘 개봉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이집트의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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