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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그 남자의 ‘목 폴라’가 웃겨?

어젯밤 꿈에 문재인 후보가 나왔다. 하얀색 ‘목 폴라’ 티셔츠 두장을 내게 보여주며 자기가 그걸 얼마나 즐겨 입고 또 애착을 느끼는지 말한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땀을 흘리며 “아, 네” 하고는 더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다. 그리곤 꿈결에도 내 의식은 이런 변명을 한다. “에이, 이게 다 ‘나 딴따라’ 때문이야. 괜히 나가서….”

예전에 <한겨레21>에 ‘전여옥을 위한 패션 제안’을 쓴 이래로(작정하고 조롱조로 쓴 글인데 그게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줬던 모양)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과 패션’이라는 테마로 원고 청탁이나 방송 출연, 심지어 강연 요청을 받곤 한다. 인과응보인 셈이다. 대부분 거절했지만 얼마 전 <나는 꼼수다>팀이 만든 <나는 딴따라다>의 게스트 출연 요청만큼은 사양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이해관계 없이도 멀리서나마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이고, 또 웬만해서는 그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우정이랄까, 인간관계의 지랄이랄까 뭐 그런 것 때문이다. 덕분에 병신 같은 허튼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말았다. 문재인 후보를 좋아하지만 그 ‘목 폴라’만큼은 아니었다는 둥, 박근혜의 패션과 머리 모양은 기본 박정희와 육영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아주 유효하다는 둥, 어떤 면에서 가장 스타일 있는 정치인은 의외로 강기갑이라는 둥의 하나마나한 뻔한 얘기들. 그나마 함께 게스트로 출연한 문성근 아저씨가 야당 정치인이 옷을 더 잘 입으면 좋겠지만 쓸쓸하게도 정말 돈이 없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당 정치인이 옷을 잘 입는 건 역시 돈이다 식의 얘기를 재치있게 정리해줘서 다행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옷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생긴 건 ‘쥐머리’고, 하는 짓은 부패한 음식으로 성찬을 즐기는 ‘똥파리’ 같은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입고 있으면 단가? 그런데도 덕분에 국내에서 그 브랜드의 인지도와 판매수익이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에라 이 원숭이들아’ 하고 욕을 해주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패션계 사람들이 덮어놓고 좋아라 하는 박근혜 후보도 그렇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옷만 입고 자라서 그 안목이라든 품위가 몸에 배어 있어서 좋다니, 뭐 저런 저렴한 인식 수준이 있나 한심하다. 최근 주진우 기자의 책을 읽고 안 사실. 특이하게도 친일과 빨갱이 전력이 모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 무려 10조원이라고 한다. 10조! 근데 박근혜 후보가 10원짜리 한장 남을 위해 쓰는 거 본 사람 있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 좋다. 나도 원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인물이 딸같이 어린 여자 연예인들에게서 성 접대 받은 걸로 알려진 인물의 딸이어야 하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디자이너 알베르 알바즈가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이 트렌드라는 헤게모니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그 때문인지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다. 문재인 후보의 ‘목 폴라’도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넥타이 대신 슈트와 와이셔츠 안에 겹쳐 입었던 라운드 티셔츠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자유롭고 소박하며 민주적인 남자가 나름대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출하기 위해 선택한 아이템 말이다. 근사해 보인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