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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남과 다르다고 울지 마라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De eso no se habla) _ 마리아 루이자 벰베르그, 1993년

<프로젝트 님>에서 침팬지 ‘님’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 가정에서 양육된다. 연구진은 님을 사람처럼 키워 언어소통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님은 후강구조상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없으며, 마침내 터득하는 엄청난 수의 수화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표현에 불과했다. 궁극적인 소통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두 번째 비극은 실패 판정을 받은 님이 침팬지 사회로 복귀하면서 벌어진다. 그때 님의 눈이 보여준 경악감은 영화에서 가장 잊히지 않을 이미지다. 님은 인간사회는 물론 침팬지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인간과 다르지 않게 키우려던 한 박사의 과욕은 한 침팬지가 고독과 슬픔 속에 삶을 마치도록 만들었다. 1970년대 초반, 우리 반에 지적장애인 한명이 있었다. 성적은 당연히 꼴찌였고, 수업 도중 의자에 오줌을 지리는 통에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오줌을 눈 채 어쩌지 못하는 소녀의 표정은 멀리 앉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국 소녀는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 몇달 뒤, 소녀의 이웃에 사는 친구가 근황을 알려왔다. 특수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는 그녀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았다. 심지어 이전 학교의 동급생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말에, 나는 ‘건방진 아이가 됐군’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녀에겐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마리아 루이자 벰베르그의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벰베르그는 1990년대에 <나는 모든 여자 중에 가장 형편없는 여자>로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아르헨티나 감독이며, <말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다. 딸 카를로타의 두 번째 생일날, 초대받은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걸 본 과부 레오노르는 거울 앞에 앉아 유별난 결심을 한다. 마을을 떠나지 않는 한 카를로타가 자신이 난쟁이라는 사실을 알면 안된다는 것. <걸리버여행기> <백설공주> <톰썸의 비밀 모험>은 불태워졌고, 레오노르는 신부에게 접근해 사람들의 입단속을 도모한다. 신비로운 남자 루도비코가 카를로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순간,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분한 노인과 십대 난쟁이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마법적인 사실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한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십년 만에 마을에 서커스가 도착하자, 레오노르와 루도비코는 이제 진실의 박스를 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벰베르그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지닌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고 써놓았다. 침팬지 님은 타인의 의지에 의해 자신이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우리 반에 있었던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자라기를 바랐을 것이다. 레오노르는 딸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었지만 타고난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침팬지 님의 마지막이 비극적인 것과 달리, 카를로타는 걸어갈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기로 한다.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불안해하고 눈물 흘리며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카를로타는 우리에게 깨우친다. 페미니스트로 살았던 노감독이 남긴 최후의 말씀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