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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어머, 섹스 칼럼 쓰세요?

긴 장거리 버스 안이다. 무려 4시간을 타야 한다. 무료하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예전에 라이선스 패션지 섹스 칼럼니스트들을 대상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편의 성인 영화가 만들어져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주인공. E잡지의 H기자. 키가 180cm가 넘는 훤칠한 외모의 H는 살기 위해서 섹스하고 섹스하기 위해서 사는 부류의 남자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당시 썼던 포주와 창녀 인터뷰를 시작으로 간 크게 일본 AV 여배우와의 인터뷰까지 감행했던 그는 생리기간만 되면 온갖 짜증을 내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당시 사귀던 여자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때부터 섹스보다 모터사이클을 더 좋아하게 됐다. "섹스에 임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자세가 일관되지 못하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뉴요커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유교적 잣대를 들이민다. 그게 우리를 발기불능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내 새빨간 이탈리아제 모터사이클은 언제나 일관되게 반응하고, 내 손짓과 발짓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게 그의 논리. 섹스는 성기의 교합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 믿는 그는 남자의 섹스에 대해 한 수 배우고자 하는 후배 여기자를 만나 이런 말을 한다. "후희는 열심히 사정한 후 스르륵 잠드는 남자에게 여자가 해주는 거다. 속는 셈치고 해봐라." 등등의 충고를 해준다. 그렇게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섹스를 다루는 그에게 어느 날 이상적인 여자가 나타난다. '싸우고 있을 때도 내 페니스를 벌떡 서게 만드는 최고의 섹스 파트너'. 심지어 이 여자 깜박하고 팬티를 안 입었다는 문자를 보낸다든지, 보철을 뺀 기념이라면서 운전 중인 그의 지퍼를 내린다든지, 하는 도발까지 부린다. 그런 여자와의 만남은 남자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슬프게도 재앙의 증후들 속에서 일이 엉망진창 꼬여 간다. 쓸쓸하게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영화를 보며 당황스럽게도 엉엉 서럽게 우는 남자의 모습으로 페이드 아웃.

두 번째 주인공은 A잡지의 L기자.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처럼 멜랑콜리하게 생긴 L은 마지 못해 섹스 기사를 쓰는 타입이다. 섹스의 기쁨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섹스 기사를 한 번 쓸 때마다 정자가 백만 마리씩 죽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 그가 모처럼 열의를 갖고 쓴 섹스 기사가 있었다. '왜 나는 너와 섹스하고 싶은가'라는 제목이고,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베이스 삼아 제법 철학적으로 썼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아 무척 좌절했다. 그 실패를 보안하고자 그 다음 호엔 남성 성기 확대술에 대한 르포 기사를 썼는데, 친한 친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그 더러운 짓을 한 시간이나 보고 서 있었다고?" 섹스 칼럼을 쓰려면 경험이 풍부하든가, 경험이 풍부한 친구들이 곁에 많든가 해야 할 텐데 불행히도 그는 양쪽 다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섹스란 콘돔이라는 베일을 쓰고 불가사의한 형태로 우리들을 찾아왔다’는 존 업다이크의 한 구절처럼 오랜 만에 자고 싶다는 강렬한 성욕을 일으키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하필 섹스를 댓가로 사랑과 결혼을 요구하는 정숙녀일 줄이야. L은 쓸쓸하게 독백한다. "이건 완전 딜인 거다. 너의 사랑을 보여주면(혹은 이만큼을 제공하면), 나도 너랑 한 번 자줄게, 라고 생각하는 행태들. 좋으면 하는 거고 싫으면 마는 거지 이것저것 재면서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극도의 외로움을 느낀 L은 영화 <피아니스트>를 틀어 놓고 이자벨 위페르가 남자 아이와 벌이는 그 유명한 화장실 신을 보며 자위를 한다.

세 번째 주인공은 G잡지의 J기자. 트루먼 카포티처럼 유니크하면서 진지한 연구생처럼 학구적으로 생긴 J는 가장 야심이 큰 섹스 컬럼니스트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쓴다'는 기획 방향 아래 한 편의 단편 소설 같은 문학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기사를 주로 쓰는데 가장 최근 기사의 제목은 '중국 여인과 일별함'이었다. 태국 피피섬에서 혼자 여행 중에 만난 중국 여자 제니 콴과의 하룻밤 얘기였다. 남자들의 섹스가 '자극'으로만 소비되는 것에 불만이 있던 그는 섹스 그 자체보다 전후의 분위기에 더 집중해서 그 기사를 썼다. 주변 사물의 구체적인 묘사 같은 거, 예를 들면 새벽 골목에 뒹굴고 있었던 클럽 전단이나, 피피섬 해변에 널려 있던 나무판자 같은 이미지들. 그런 그에게 최고의 섹스 파트너는 사랑하는 여자다. "그리고 최악은, 술에 취해서 몸도 못 가누는 주제에 엉겨 붙는 여자. 혹은 "오늘 오빠랑 한 번 자지 뭐" 라는 식으로 쿨한 척하는 여자들. 난 쉬운 여자니까 맘대로 해도 좋아요"라는 말로 들린다. 재미없다." 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렵게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의 중국 여자를 사랑하게 된 그는 어설픈 영어로 폰 섹스에 이어 사이버 섹스까지 서투르게 감행하며 섹스가 단순히 삽입과 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소통'의 문제라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며 단념한다. 그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J는 주장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남자보단, 서툴러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남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