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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작은 사치의 시간

주머니 사정이 어떻든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것만큼은 꼭 누리면서 살고 싶다는 식의 ‘자기만의 사치’가 다들 한 가지씩은 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와 먹을지언정 질 좋은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이드웨이>의 그 애잔한 남자주인공처럼 말이다.

나름대로 틈틈이 소비란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나이지만, 내게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사치가 있다. 바로 편백나무 욕조에서 즐기는 느긋한 목욕 시간이다. 지금의 남편과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혼수랍시고 내가 가장 공들여 장만한 거의 유일한 품목이 이른바 ‘히노키’라고 불리는 그 나무 욕조였다. “이사하기 전날 밤 잘 데가 없어서 가까운 모텔 갔잖아. 그런데 오빠가 3만원인가 4만원짜리 그 싸구려 모텔에 욕조있는 욕실이 있고 심지어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온다며 얼마나 아이처럼 뛸 듯이 좋아하던지…. 그 때문에도 내 카드 한도가 허용하는 선에서 제일 좋은 욕조를 사고 싶었어.” 그때 남편은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얘기를 했다. 감옥에서 나와 50년 만에 온수 나오는 집으로 이사한 뒤 한겨울에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른께서 얼마나 감격하며 좋아하셨는지. 그에 비하면 우리의 욕조는 엄청난 사치였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 향이 은은하게 나는 그 욕조를 2년 가까이 사용하며 사치라는 것이 살면서 이토록 두고두고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든 마땅히 누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기름이 아까워 한겨울에도 난방을 잘 하지 않는 우리는, 집 안에서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살 정도로 춥게 지낸다. 그러다 2~3일에 한번 중세 시대의 연인들처럼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촛불을 켜놓은 채 함께 반신욕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몸이 노곤해지니 대화까지 달콤해진다. 게다가 매우 경제적인 선택이었다는 확신마저 든다. 욕조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을 뽑고자 두 사람이 같이 반신욕하고 그 물을 떠서 다시 머리 감고 샤워하는 데 사용하는 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사치가 낭비가 아니라 사실은 좀더 지혜로운 선택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이제 부자들에게 남겨진 진정한 호사스러움은 시간적 여유와 말로만 하는 박애, 이 두 가지뿐이다”라는 글을 어느 책에선가 읽고 무척이나 고소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크리스마스 캐럴, 따뜻한 목욕물,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켠 양초, 와인 한병(어쩌면 두세병), 손수 만들어 보기 좋게 담아낸 안주 한 접시만으로 삶의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베블런이 말한, 정복욕과 우월감으로 누리는 사치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사치스러운 것은 에르메스나 샤넬 매장에서 얻을 수 없다. 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지만 저마다 각기 다른 취향과 삶의 방식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걸 약간씩 무리해서 누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사치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밤이 다가오고 있다. 저마다의 작은 사치를 부리고 그걸 나눌 사람이 있다면 우리 삶이 이만하면 그런 대로 윤택하다는 걸 느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