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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나의 뮤지컬 원정기
전계수 일러스트레이션 황정하(일러스트레이션) 2013-01-25

지난여름과 가을, 초겨울에 걸쳐 정신없이 달려왔던 뮤지컬 <내 사랑 내 곁에> 작업이 모두 끝났다. 무대 작업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영화와는 너무도 다른 낯선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도 많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작업 중간에 여러 스탭들이 교체되는 진통도 있었다. 작업을 위해 공연장 근방에 방을 하나 잡았었는데 발 뻗고 편히 잠든 날이 손에 꼽힌다. 매일 밤 무대가 단두대로 바뀌는 끔찍한 악몽에 뒤척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멱살을 잡기도 했었다.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에 들어가기 전 ‘SO WHAT’ 칼럼을 통해서 작업에 임하는 각오 비슷하게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하는 무대 작업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설레던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설렘이 악몽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와 뮤지컬은 프랑스어와 중국어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문법이 다르고 용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르고 무엇보다 문화가 달랐다. 파리의 중국인처럼 매번 모퉁이에서 길을 헤맸다. 함께 고민을 나눴던 동료 스탭들이 하나둘 해고될 때는 깊은 무력감마저 느꼈다.

힘들어할 때마다 손을 잡아준 것은 배우들이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같이 12시간을 함께 지내며 무대 위 동선을 만들어 나갔다.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함께 새벽까지 음악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리며 수없이 춤과 노래를 반복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커다란 기쁨이자 유일한 위안이었다. 컴퍼니와의 갈등으로 잠시 연습장을 떠나 있을 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와 위로를 건넨 것도 배우들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23명의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작품을 끝내고 나면 벼락처럼 슬픔이 몰려들 때가 있다. <삼거리극장> 촬영을 크랭크업한 다음날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를 봤었다. 극중 커트 코베인의 분신인 블레이크가 마약에 취한 채 웅얼거리며 노래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가슴속에 파도가 솟구치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러브픽션>의 편집을 마치고는 해질녘의 강화도로 여행을 갔었다. 바닷물이 빠져 드러난 드넓은 개펄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뱃고동처럼 들려왔다. 방을 하나 잡고 소주를 마시면서 펄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이번 작업을 끝내고 나서는 부산과 통영을 여행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며칠 전 아랫배에 에이는 듯한 통증을 느껴 내시경 검사를 받았더니 위에 천공이 생겼다고 한다. 돌아보면 누굴 탓할 일은 아니었다. 작은 그릇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했다. 뱃속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숱한 욕망들을 주워 삼켰다. 문제는 늘 그것이었다. 매번 경계하면서 실패한다. 그래서 교훈은? 글쎄…. 닥치고 영화나 잘 만들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