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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뒤늦은 선택 <하이힐>
주성철 2014-06-04

장진 감독이 지난 영화들을 쉬엄쉬엄 찍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하이힐>은 분명 감독 장진과 배우 차승원의 ‘독기’가 서린 영화다. 단지 견고한 누아르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이전까지 장진의 영화들은 대사의 성찬이 빚어내는 절묘한 상황극의 묘미 그 자체가 종종 다루고자 하는 주제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면, <하이힐>은 자신을 숨기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성소수자의 뒤늦은 선택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장진으로서는 이전과 달리 ‘발언’하는 영화를 택한 셈이고, 차승원으로서는 이전과 비교해 가장 강도 높은 액션은 물론 은밀한 ‘여장’까지 소화했다. 어쩌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지욱(차승원)은 지난 몇년간 TV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인천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연출감독, 뮤지컬 연출가, <SNL 코리아> 진행자 등 여러 포지션으로 지내온 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반영이 아닐까.

거칠고 강한 강력계 형사 지욱은 내면 깊숙이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를 후배 형사 진우(고경표)는 존경의 눈빛으로, 그의 수사를 돕는 바텐더 장미(이솜)는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상대하는 범죄조직의 2인자 허곤(오정세) 또한 그의 남자다운 매력에 빠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욱은 진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한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러자 허곤은 그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을 꾸민다.

속상하게도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지욱에 대해 모른다. 지욱을 좋아하면서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 모두 그의 진짜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또한 너무 기분 나쁘게도 그의 여성성을 눈치채는 인물은 그저 딱 한순간 마주했을 뿐인 짐승 같은 변태 남성 범죄자다. 그렇게 우리는 무신경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하이힐>은 온전히 차승원의 뒤를 따른다. <아저씨>의 원빈 이후 <베를린>의 하정우, <용의자>의 공유, 그리고 뒤이어 모습을 드러낼 <우는 남자>의 장동건과 경쟁하듯 ‘제이슨 본’처럼 강도 높게 싸우는 그는 영화의 장르적 재미와 낯선 주제 사이에서 노련한 줄타기를 한다. 그런 그를 엘리베이터에서 평범한 가족(김원해, 정명옥 등 <SNL 코리아>의 크루들)과 맞닥뜨리며 유머러스하게 커밍아웃하도록 만드는 장면은 기발하다. 여러모로 <하이힐>은 장진이라는 예술가의 내면에 자리한 옛것과 새것 사이의 기분 좋은 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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