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같기도 하고 현재 같기도 하다. 나이가 많고 행동도 제멋대로인 여배우 로빈 라이트(로빈 라이트)는 스튜디오로부터 최후통첩을 받는다. 컴퓨터 스캔을 통해 그녀의 외모와 연기 데이터를 통째로 팔라는 것이다. 실제 연기는 완전히 포기해야 하지만 그렇게라도 경력을 유지하며 아픈 아들을 보살피고자 그녀는 계약을 수락한다. 그리고 20년 뒤 영화도 유물이 된 시대, 그녀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 초청받아 갔다가 추가 조항 수락을 요구받는다. 자신을 화학식 형태로 팔게 허락하는 조건이다. 이제 누구든 그녀를 섭취함으로써 그녀로 변할 수 있다. 영화도 환각제를 팔기 위한 광고에 불과하다. 로빈은 스튜디오가 테크놀로지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길들이는 것에 반대하다 가상 세계에 그만 갇히고 만다.
<바시르와 왈츠를>의 아리 폴만이 스타니스와프 렘의 SF소설 <미래학 회의>를 각색한 작품이다. 전작에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해 학살의 기억과 망각을 다뤘던 그는 이번에도 실사 대 애니메이션, 현실 대 환각 등 이중 대립의 구조로 시각 문화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초반부엔 배우의 물리적 현존을 통한 전통적 연기 개념이 어느 정도로 유지되거나 타협될 것인지에 관해 질문하고, 다음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더 철저히 장악해나가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며, 그로 인해 누구나 모두가 될 수 있다는 거짓 환상 속에 살아가게 된 개인들이 정체성과 자유의지를 상실할 것을 우려하고, 그럼에도 사람들이 개별적 경험과 기억으로 돌아감으로써 자기 상상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한다.
거대하다면 거대하다고 할 수 있을 이런 화두들이 한 영화에 충분히 녹아들 수 있을까. 폴만은 하나의 가설에서 다음 가설로 성큼성큼 논리를 전개해나가며 그런 의심을 불식시킨다. “환각의 세계”를 묘사한 애니메이션 부분이 영화 산업의 구조와 체제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기능함은 물론이다. 3D와 모션캡처 기술이 만연한 시대에 실사 촬영을 골조로 작업한 2D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이 세계의 ‘매트릭스’를 재구성한 점도 재미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영화 연기의 미래에 관해서만 해도 “실제 배우가 최종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 <더 콩그레스>가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폴만의 의견이다. 그의 말을 확인시켜주듯 ‘프리 아바타 시대’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장면을 더러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