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 그리고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의오프닝 크레딧에선 ‘반짝반짝영화사’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충무로의 주목받는 여성 프로듀서와 재능 있는 시나리오작가로 인연을 맺은 반짝반짝영화사의 김무령 대표와 이해준 감독은 오랜 영화적 동지다. <살인의 추억>을 함께 작업한 봉준호 감독이 ‘철의 여인’이라 부를 정도인 김무령 대표의 철두철미한 성격과 이해준 감독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일까. 그들의 영화는 최근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소재와 디테일함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10월30일 개봉하는 <나의 독재자>는 두 사람의 세 번째 합작품이다.
-<나의 독재자>는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에 이어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세 번째 작품이다. 개봉을 앞두고 요즘 어떤 얘기를 나누나. =김무령_별 말 안 한다. (웃음)
이해준_말 안 하고, 영화에 다 담았다. (웃음)
김무령_감독님과 영화 세편을 같이 하고 있잖나. 요즘 드는 생각이, 작품에 따라서 감독님의 톤 앤드 매너가 달라진다는 거다. <나의 독재자>를 하면서는 사실 가장 힘들었다. 이야기 자체도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많은 데다 감독님이 체감할 다양한 부담들이 이 세 번째 영화에 밀려와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풀어야 할 숙제와 부담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다. 같은 사람인데, 작품마다 좀 달라진다는 게 참 재밌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힘들었다. (웃음)
이해준_독재자를 하도 많이 보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싶기도 하고…. (웃음) 영화도 사람이 하는 일이잖나. <김씨 표류기>를 찍을 때는 촬영환경이 좋았다. 자연 속에서 영화를 만들다보니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기분이 좋은 거다. 그런데 <나의 독재자>는 또 달랐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리허설’이 있다는 기사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이해준_정확히 기억이 나는데, 2007년의 한 신문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고 이렇게 혹독한 시절에 반대편의 논리로 철저하게 살아내야 했던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해지더라. 그런 생각을 마음 한켠에 두고 <김씨 표류기>가 끝날 즈음 차기작을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다분히 개인적인 선택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 영화를 꼭 만들어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이해준 감독이 대가족의 막내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안에서, 당신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나. =이해준_영화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독재자 같은 분이셨다. 그 시대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몸도 안 좋으신데 화도 많이 내시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집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는 거다. 내 위로 누나들이 많다. 절대적으로 가혹한 아버지와 수많은 누나들. (웃음) 이 이상한 공존 가운데서 자라났다. 역시 여성들이 중요하다. (웃음)
김무령_얼마나 가족이 많은지 아나? 9남매다. 그중에는 쌍둥이도 있다고 하더라. 처음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재밌었다. (웃음)
-<나의 독재자>의 배경은 1972년과 1994년이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해는 2000년, 2007년이었다. 회담이 결렬되었던 시기를 굳이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혹은 그 특정 시기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해준_우선 1994년을 선택한 가장 명백한 이유는, 그해에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달 전에 사망한 극적인 팩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팩트가 나에겐 중요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회담은 성공적이었잖나. 나에겐 94년, 무산된 정상회담의 리허설을 했을 누군가의 이야기가 온전한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닌,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1972년과 94년을 선택한 건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충돌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0년대 개발독재시대, 아버지들의 희생과 노고가 열매를 맺어 경제적으로 수혜를 받는 세대들이 등장한 시기가 90년대잖나. 그 두 시대의 충돌을 그려보고 싶었다.
-유신시대, 북한, 김일성, 재개발 등 다루는 소재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김무령_이야기가 다루는 소재와 배경이 독특하다보니 영화로 보는 게 아니라 글로 읽었을 때 너무 세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을 때 어려움이 좀 있더라. 또 70년대와 90년대는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시대극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예산이 기대보다 적게 측정된 부분이 있다. 최대한 그 시대를 담아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 부분은 감독과 연출부들의 역할이 더 컸고 나는 그보다도 드라마에 대한 고민을 더 했던 것 같다.
이해준_제작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소재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였다. ‘우리 아버지는 연극배우도 아니고, 자기가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쩐지 영화를 보고 나니 아버지가 생각나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이 중심이 되는 영화여야 한다는 건 <나의 독재자>를 만들며 우리가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준_투자가 확정되길 기다리는 상황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을 배우를 고민할 시간이 좀 있었다. 성근이라는 역할은 기본적으로 22년이라는 시대를 넘나드는 연기의 진폭이 필요했고, 에너지가 있는 배우여야 했다. 그런 걸 다 갖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왜 설경구가 아니어야 하는지 이유를 대기가 힘들 정도로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당시에 시뮬레이션도 좀 해봤다. 성근의 젊은 시절은 <박하사탕> 시절의 설경구처럼 아릿한 느낌,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역도산>의 묵직함을 대입시키면 되겠다고 말도 안 되는 계산을 했지만, 정작 경구 형은 전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더라. 해일이의 경우, 이 이야기를 만들기도 전에, 아주 단출한 시놉시스만 가지고 있었을 때 우연히 동네 김치찌개집에서 만났다. 그때 다음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거기까지만 듣고도 ‘오, 재밌겠다, 나 뭐 하면 돼?’라고 하더라.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내가 자꾸 해일이를 생각하며 태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아버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 소위 말해 해일이 정도 급이 되는 배우가 아들을 맡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었는데 해일이 너무도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줬다. 해일이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라고, 경구 형과도 늘 그 얘기를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 그리고 <나의 독재자>까지 세편의 영화를 거치며 이제는 이해준 사단, 이해준 월드를 구성하는 사람과 요소들이 생겨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부터 먼저 말하자면 전작에 출연했던 박영서, 이규형 같은 배우들과 김홍집 음악감독, 송종희 분장감독, 김병서 촬영감독 등의 스탭들이 그렇다. =이해준_나에겐 영화 작업만큼이나 사람들과의 인연도 굉장히 중요하니까, 계속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 영서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영서는 <천하장사 마돈나>에선 중국집 아들로 나왔고 <김씨 표류기>에서는 짜장면을 배달하는 친구로 나온다.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중국집 배달부로 나오는데, 영서에게 “앞으로 내가 찍는 영화에 중국집 배달부가 나온다면 그건 무조건 너야. 너는 중국집 배달부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기대하면 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 태식을 짝사랑하는 역할로 출연하는 류혜영도 <김씨 표류기> 때 려원씨의 대역으로 출연한 인연이 생각나 이번 영화에 다시 캐스팅하게 됐다. 이규형이 맡은 주사파 학생 철주는 <김씨 표류기> 때 119 대원 목소리로만 출연했는데 아쉬웠던 마음이 있어 다시 함께 작업하게 됐다.
-당신의 세편의 영화에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음식은 바로 짜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 이유에선가. =김무령_평소에 짜장면을 즐겨먹는 것도 아니다.
이해준_짜장면을 별로 안 좋아한다. 짬뽕을 좋아하지. (웃음) <김씨 표류기> 때 시나리오가 안 풀릴 때마다 습관적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그거라도 먹으면 좀 생각이 풀릴까 싶어서. 그때 너무 물리게 짜장면을 먹어서 이제는 보기도 싫은 음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흔히 떠올리는 음식 중 하나가 짜장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소품으로 자꾸 등장시키는 게 아닐까. <나의 독재자>에서도 그렇다. 성근이 정보부에 갇혀 살아갈 때 허 교수가 뭐 먹고 싶냐고 묻잖나. 그 상황에서 ’순두부 찌개’라고 말하면 이상할 것 같더라. 감자탕도 이상하고. (웃음) 짜장면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언제 처음 만나게 된 건가. =김무령_감독님이 작가였던 시절이니, 아마 2000년 즈음이었을 거다. 당시 나는 영화사 봄의 오정완 이사님, 이유진 대표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이해준, 이해영 감독은 그곳의 전속작가로 있었다. 그때 만나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이후에 두 작가가 내가 제작하려던 영화 <반짝반짝 빛나는>의 각색을 맡기도 했다. 그 작품은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에 이해준 감독은 현장경험이 없기 때문에 연출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를 하고 있던 차였다. 내가 지켜보기엔 워낙 글을 잘 쓰고, 굳이 현장 경험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에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천하장사 마돈나>였고,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반짝반짝영화사를 만들었다.
-반짝반짝영화사의 창립작 <천하장사 마돈나>부터 <나의 독재자>까지, 세편의 영화를 함께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김무령_우선 시나리오를 잘 쓴다. 그리고 그게 어떤 장르의 영화가 됐든 간에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 그 좋은 이야기에 부족한 점은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웃음) 무엇이든 완성도 있게 만들어가려는 모습이 좋다.
이해준_일단 ‘믿음’의 문제가 크다. 요즘은 투자자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강한 프로듀서의 역할이 실종된 시대인 것 같다. 어떤 산업이든 힘의 균형이 필요한 거잖나. 투자자와 제작자, 스탭간의 긴장과 견제가 잘 이루어졌을 때 건강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투자자로부터, 스탭들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들을 보완해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 제작자라고 했을 때 요즘은 믿음 가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그런 면에서 김무령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제작자다.
-2006년에 영화사를 설립했으니, 10주년이 머지않았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김무령_향후 계획은…. 이해준 말고 다른 감독과도 영화를 해봐야겠다.
이해준_한번 해보세요. (웃음)
김무령_내리 세편을 같이 하다보니 반짝반짝은 이해준이랑만 영화 하나보다, 이 얘기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웃음) 지금까지는 너무 정답이어야만 움직였다면, 이제는 좀더 유연하게 움직이려 한다. 다양하게 일도 벌이고, 다른 감독들과도 작업하면서.
-차기작도 반짝반짝영화사와 함께하는 건가. =이해준_대표님이 다른 감독과 하신다니…. (폭소)
김무령_반짝반짝에서 만들 거다. (웃음)
“그런데 반짝반짝영화사 리더필름에는 늘 동물이 등장하는 게 컨셉인가요?” <나의 독재자>의 언론 시사회가 있던 날, 누군가 김무령 대표에게 물었다고 한다. <김씨 표류기>가 개봉할 때에는 오리배가, <나의 독재자>에는 염소가 리더필름의 마스코트였다. 그건 이해준 감독이 만들고 김무령 대표가 제작한 영화 속에서 귀엽고 소소한 웃음을 줬던 요소들이었다. “이번 마스코트로 염소를 넣은 건 그런 의미도 있다. ‘이 영화, 무거워 보이지만 좀 가볍게 보셔도 돼요’라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리더필름에 귀여운 염소가 울고 있는 모습을 담았으니, 누군가는 그 의미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을 무언가에 사소하지만 소중한 의미를 담아내는 것. 그건 반짝반짝영화사와 이해준 감독이 만들어온 영화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