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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살아가는 게 내 직업이에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드라마 <오만과 편견> 최민수

드라마 <모래시계>(1995)가 혈기왕성한 30대 최민수의 모든 것이 집약된 작품이었다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오만과 편견>(2014)은 50대 최민수가 가진 경험과 노련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문희만 부장검사를 맡았던 그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능구렁이 같은 인물이 되기 위해 ‘최민수’를 싹 지워버렸다.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아직도 철들지 않은 그가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현재 극장 개봉하고 있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노숙자 대포 역할로 거의 8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 또 하나는 이제부터 ‘배우 최민수’를 좀더 자주 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오만과 편견> 촬영이 끝난 그에게 뒤늦은 만남을 청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혼자 음악 창작하고, 사람 안 만나고, 그러고 있죠. 이 작업실에서.

-드라마 종영한 지 얼마 안 된 까닭에 문희만 부장검사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아요.

=아직 못 보냈어요. 보내고 싶어요. 요즘 새벽 6, 7시에 지쳐 잠이 드는데, 꿈속에서 계속 촬영하고 있어요. 문희만을 연기한 뒤로부터 모든 감각을 육하원칙으로 바라보고, 어젠더의 조건으로 분석하고 있으니 많이 힘들죠. 어떤 캐릭터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최민수가 없어요. 있으면 안 돼요. 드라마 <로드 넘버원>(2010), <무사 백동수>(2011) 찍을 때 잠시 서울에 올라오면 휴가 나온 것 같고.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촬영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만과 편견>에 합류한 이유가 있나요.

=<로드 넘버원>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진민 PD는 오래 알고 지내 애착이 가는 감독이에요. MBC에서 검찰을 소재로 한 센 드라마를 준비하다가 무산됐어요. 감독과 작가가 힘이 빠진 상태에서 이야기를 좀더 순화해 다시 준비한 게 이 드라마예요. 6년 만에 김진민 PD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얘기를 듣고 하기로 한 거예요.

-문희만 부장검사는 꽤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검찰이 대외홍보용으로 만든 민생안정팀을 맡아 검찰 국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서 실적 올리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나 윗선의 입김이 닿은 사건을 불기소 처리하도록 신입 검사 열무(백진희)에게 압력을 넣는 동시에 기소에 필요한 결정적인 증거를 몰래 책상 위에 놓고는 생색까지 내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메두사를 표현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지만, 실제로는 중세 판사들이 쓴 흰 가발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우리 것이 아니기에 좀 그렇긴 했지만, 언론에 이런 얘길 하지 않은 건 우리 정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흰옷만 입고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정의를 지키고, 버티기엔 너무 어려워요. 때로는 옷에 때나 피가 묻어야 해요. 문희만은 피의자를 대할 때 정공법으로만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존댓말과 반말을 섞은 말투도 그런 생각에서 나온 거죠.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를 분석한다는 건 체화시키는 과정이에요. 그 인물이 되면 분석이 필요 없어요. 그 점에서 나는 좋은 배우가 아니에요. 그만큼 분석한다는 건 거짓말로 나를 꾸며 진짜처럼 보이려고 하는 건데. 어쨌거나 내게 주어진 두달 동안 기울였던 분석의 과정이라면 언론인들, 시사 프로그램을 많이 챙겨봤어요.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말투는 어떤지. 문희만을 믿게 하기 위해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으려고 많이 헤맸어요. 다행스럽게도 작가와 PD가 만족스러워했어요.

-영화 얘기도 좀 해보죠. 현재 극장 상영 중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거의 8년 만의 영화 출연작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나도 영화하고 싶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실 왜 작품이 안 들어올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간간이 들어오긴 했어요. 그중 하고 싶은 작품은 없었어요. 데뷔 때부터 김종학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인기 있는 감독하고는 잘 안 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해서 출연을 못한 거예요. 연기도, 인간관계도 못했고. 처세도 잘 못한 것 같아요.

-그 점에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들어왔을 때 반가웠겠어요.

=반가웠다기보다는 그냥 나대로 살았어요. 작품, 음악 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예뻤어요. 내 꼬라지가 그런 것 같아요.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작품 많이 하면 돈 벌고 좋지. 그런 생각하다가 막상 작품 들어오면 이리저리 보다가… 하면 되는데 꼭 못하더라고. (웃음) 큰 문제예요.

-노숙자를 연기한 건 처음 아닌가요.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른 것도 낯설었어요.

=그렇게 긴 적이 거의 없었어요. 세수도, 분장도 안 해요. 촬영이 있는 날에는 세수를 안 하고 갔을 정도예요.

-영화가 개봉한 지 2주 만에 상영관이 10여개로 줄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쉬움보다는… 계란으로 바위 친다고 하는데 계란 아까워요. 갑의 횡포라는 말이 많은데 해결 안 될 것 같으면 말하지 말고. 대신 강건하고, 지혜로워져야죠. 바람이 있다면, 동네마다 200, 300석 규모의 극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청이 운영하는 상영관도 많잖아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현재 지방에서 전혀 볼 수 없으니 대안 상영관에서라도 상영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나야 해요. 좋은 영화를 선별해서 틀어주는 극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걸 누가 못했나요. 우리가 못한 거예요. 천만 영화는 우리가 선택한 거예요. 우리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됩니다. 그렇잖아요?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8시마다 하는 공연은 이번 달에도 하나요.

=최근 두달 동안 드라마를 찍느라 못했어요. 다음주 토요일(1월24일)에 해요.

-드라마 촬영하기 전 열렸던 공연 보러 갔을 때 공연장 밖에서 손님을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튀려고 한 건 아니고. 생활이에요. 음악이든 뭐든 붉은 카펫 위에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다는 아니잖아요.

-입장료를 내니 맥주 대신 이온음료를 주는 것도 특이하더라고요.

=응? 그날 맥주가 떨어졌나. (좌중 폭소) 왜 웃어?

-술 끊은 것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어요.

=술을 끊으니 세상 살아가는 즐거움의 2/3가 없어져요. 술을 왜 끊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봤어요. 취한다는 건 신경이 마비되는 건데 우리는 왜 신경이 마비되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거지? 왜 술은 내가 망가지길 원하지? 술을 마시면 자괴감이 들잖아요. 그게 뭐가 좋다고 술을 마셔야 되는지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결론은,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평소에 취해 있겠다.

-2013년 발매된 앨범 《Smoky Mountain》에 수록된 곡 <새하얀길>은 10분을 훌쩍 넘기더라고요. <녹슨바이크의 안장>이나 <스모키 마운틴> 같은 곡도 8분이 넘고.

=아까 연습한 곡도 10분 넘어요. 노래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 때 1절, 간주, 2절, 간주, 끝 이런 형식이 싫어요. 연주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곡이 좋아요. 아프리카 주술 축제 때 영혼이 끓어야 하고, 작두를 타려면 활활 타오르는 과정이 필요해요. 나는 가수도, 연기자도 아니에요. 살아가는 게 내 직업이에요. 연기나 연주는 취미 삼아 하는 거예요. 내게 음악은 그저 삶의 일기를 쓰는 것일 뿐이에요.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가족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데요. 지난해 큰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던져주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냥 도서관에서 짐 나르고 해서 번 돈 10만원인가, 12만원을 봉투에 넣은 채로 주면서 딱 때리더라고요. (웃음)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하면서 말이에요. 비밀 하나 얘기해줄게요. 사람들은 기념일이나 빨간날을 기대하잖아요. 우리 가족은 매일 기념일이자 빨간날이에요. 매일 이벤트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가족끼리 있으면 행복해요. 셀러브리티의 집안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해 훔쳐보는 외국 예능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아내가 우리 집을 그렇게 공개하면 세상이 뒤집힐 거래요.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없어요, 없어.

-<권법> 프로듀서도 그 공연을 보러왔던데요. (웃음)

=음. <권법> 찍기로 약속했는데. 박광현 감독과 안 지 오래됐고, 참 좋아하는 동생이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들어가면 하고, 안 되면 할 수 없고. 뭐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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