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7살 꼬마 상우(유승호)는 엄마의 손에 끌려 한번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김을분) 집으로 간다. 혼자서 상우를 키우던 엄마는 할머니에게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만 상우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는 온 날을 되짚어 서울로 되돌아간다. 낯선 초가집과 할머니가 어색하고 싫기만 한 상우는 매번 할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을 내친다.■ Review “상우 애비요? 예전에 헤어졌어요.… 요샌 일자리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자리 잡는 대로 데려갈게요.” 엄마가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저간의 사정이 보이스오버로 들리는 동안 상우의 시선으로 집안 여기저기가 카메라에 담긴다. 벌레가 기어가는 마룻장 틈새, 깨진 유리창에 걸린 거미줄, 지저분한 검정 고무신. 상우와 함께, 우리 또한 진작의 한국영화가 주목한 적 없는 풍경 안으로 들어간다. 낯선 만큼 친근한, 친근한 만큼 낯선 풍경 속으로.
엄마가 떠난 뒤, 이제 산간 오지의 외딴집에 두 사람만 달랑 남는다. 상우는 추레한 데다 말조차 못하는, 난생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할머니를 ‘병신’이라 놀리고 고무신을 숨기고 요강을 발로 걷어차고. 하지만 이런 심술들이 실은 졸지에 ‘엄마 없는 아이’가 된, 외로운 꼬마의 투정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켄터키 치킨이 먹고 싶어”라는 다분히 아이다운 투정이 마음 한자락을 울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할머니는 그런 상우에게 한없는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상우는 좀체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할머니는 손으로 가슴에 원을 그리며 손자에게 거듭거듭 미안함을 전한다. 아낌없이 주고도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마음, 그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지 모른다. 모성애 말이다.
<집으로…>는 그 사랑을 속된 세상의 먼지가 묻지 않았을 맑고 깊은 산자락 밑에 배치한다. 칠십 평생을 그곳에서 산 할머니는 이미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살아낸 시간만큼 모성도, 자연도 할머니 안에서 깊이 무르익었다. 그런 연유로 할머니가 등장하는 화면에서 전경과 배경을 따로따로 가려내기 어렵다. 나아가, 이 영화의 어떤 미장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인물들은 자연 안에 오롯이 ‘담긴다’.
모성이나 자연이나, 인간을 살리고 키우는 가장 근원적인 힘임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아왔거나 지나치게 당연시해왔다. <집으로…>는 그러한 망각을, 우리 또한 한때 상우였고 ‘여전히’ 상우임을 아프게 각인시킨다. CF에서조차 드물지 않을 낱낱의 에피소드들이 우리의 마음을 들쑤시는 것도, 그러한 속절없는 죄책감 탓이 크다. 할머니는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느리게 상우의 마음을 적셔간다. 더불어 상우의 위악 섞인 장난에 웃음 짓던 우리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자연이 그러하듯, 할머니의 사랑에는 소리가 없다. 자기를 앞세우는 법이 없는 그 사랑의 겸손함은 기역자로 허리가 꺾여 상우만큼 낮아진 할머니의 육체로 구체화된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에 나왔던, 손자에게 키를 나눠주고 할머니는 점점 작아진다는 그 동화를 연상시키는 이 설정으로 할머니와 상우는 나란히 카메라에 잡힌다.
할머니의 느릿한 바느질처럼, 감독은 ‘드라마틱한’ 감정의 자극을 피한 채 작은 에피소드들을 한땀한땀 떠가며 청명한 서정을 길어올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놀라운 그 무엇’을 발견해 언어화하는 예민한 시인처럼, 감독은 볼품없는 할머니의 주위를 맴돌며 정갈한 시정을 자아낸다. 마치 현실과 현실을 모사한 이미지가 완연히 다른 질감과 뉘앙스를 갖듯- 박수근의 그림처럼-, 삶의 풍파가 고스란히 화석으로 남은 듯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보자기를 싸는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에서 저릿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진 이미지에 가까운 할머니의 얼굴 클로즈업이야말로 감독이 들려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세월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하는지도 모른다.
이정향 감독은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이룬 성취점의 거의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해 ‘할머니의 집’으로 간다. 스크린 안팎의 ‘안전핀들’을 모두 뽑아냈지만 그의 발걸음에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회의가 없는 담론은 지겨운 강요, 혹은 상투적인 감상이 되기 십상이지만 <집으로…>는 현명하게도 양쪽 나락을 다 피해가며 목적지에 이른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감독의 우직한 진심은 에누리없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데뷔작과 거의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했지만, 사실 <집으로…>는 전작과 핵심 요소 하나를 공유한다. 장르와 형식을 떠나 두 영화 모두 감독 자신의 사적인 체험에 토대를 두었으며, 영화의 정서적인 힘도 거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이정향 감독은 <미술관 옆 동물원> 개봉 즈음의 인터뷰에서 여주인공 춘희의 역할 모델이 자신이라고 밝혔다). ‘삶으로서의 영화’가 가능한 사례 하나를 우리는 이정향 감독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영화들은 여성주의적(feministic) 이슈를 제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여성적인(female) 경험의 세계에 놓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한국영화의 풍경을 전보다 다채롭게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쳐진, 이 무구한 송가의 마지막 절에다 감독은 다시 혼자가 된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자신의 허리처럼 휘어진 꼬불꼬불한 산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이 할머니의 뒷모습에는 영화라는 매체만이 포착할 수 있는 ‘아우라’가 걸려 있다. 언어로 형용되기 어려운 이 ‘아름다운 슬픔’을 뒤에 남겨두고 할머니는 조용히 집으로 들어간다. 이유란 fbird@hani.co.kr
<집으로…> O.S.T
나지막한 감정의 조율사
말 못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와 시골 냄새가 낯설어 말하기 싫은 아이 상우가 짝을 이룬 <집으로…>는 조용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외로운 아이는 가끔 짜증섞인 투정을 늘어놓는 것 외에는 뾰로통하게 입을 닫은 채 홀로 시골집과 낯선 자연 속을 맴돌고, 그런 손자를 다독이려 애쓰는 할머니는 가슴에 품은 말을 느린 손짓으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상우와 할머니의 감정이 말없이 교차하며 더디게 공감을 쌓아가는 동안, 피아노와 아담한 실내악 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이 그 소리없는 감정의 흐름을 뒷받침한다.
<집으로…>의 음악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깔끔한 피아노와 재즈풍 음악으로 이정향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대홍씨와 김양희씨가 맡았다. 대사와 감정의 과잉을 자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과장된 신파조를 지양한 노력이 돋보인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플루트와 오보에, 소규모 현악단이 가세한 선율은 서정적이되, 쉽게 슬픔에 치우치지 않는다. 할머니의 비녀를 챙겨 배터리를 사기 위해 물어물어 잰 걸음을 옮기고(<비녀>), 밤중에 잠든 할머니 몰래 백숙을 뜯으며(<닭 먹는 상우>), “늑대다” 대신 “미친 소다”를 외치는 거짓말쟁이 소년이 되는(<달려라 달려!>) 상우를 주로 감싸는 목관악기의 음색은 푸근하면서도 어딘지 익살맞은 기운을 띠고 있다. 실로폰과 유사한 마림바의 동동거리는 리듬 역시 생기를 더하는 요소.
한편 상우가 시골집으로 향할 때 흐르는 <집으로 가는 길>의 변주나 할머니가 자장면을 사줄 때의 피아노곡 <할머니의 마음 I>, 같은 주제를 피아노와 현악기의 떨림, 목관악기의 부드러움으로 변주하면서 서운한 이별의 속내를 내비치는 <할머니의 마음 II>와 <준비> 등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고 서정성이 풍부한 선율로 관객의 눈시울을 자극한다. 생기와 슬픔을 안은 서정을 조심스럽게 오가는 <집으로…>의 음악은, 영화에 쓰이지 않은 3곡까지 모두 21곡의 연주곡으로 O.S.T에 담겨 있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