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한국영화사는 한국 남자 영화인들의 역사다.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초판 1968년, 개정판 2002년 출간)를 비롯한 영화사 쓰기는 대체로 남성 연구가들에 의해, 남성 감독 계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박남옥 감독이 한국 최초 여성감독으로서 역사서에 빠짐없이 기록되긴 했지만 바꾸어 말하면 ‘최초’의 의미를 부여할 인물이 아니고선 영화사에서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2000년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임순례 감독,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힌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은 20주년을 맞이하여 여성 영화인들의 일과 삶, 영화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 을 제작했다. 이는 2001년 여성문화예술기획,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이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여성 영화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활동상을 정리한 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영화인 사전 작업이다. 이 기획은 “사전 형태는 좀 딱딱하니 30년 역사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여성 영화인의 인터뷰를 기록하자”는 사계절 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지금의 인터뷰집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주진숙 원장과 이순진 연구자가 인터뷰어로 나섰고 심재명·안정숙·임순례·박곡지·채윤희·전도연(이상 1990년대)·문소리·강혜정·류성희·최은아·남진아·신민경·박혜경·김영덕(이상 2000년대)·제정주·엄혜정·김일란·윤가은·전고운·천우희(이상 2010년대 이후)가 시대와 직군을 대표하는 인터뷰이로 선정됐다. 개인의 미시사를 통해 여성 영화인의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이번 기획은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성차별과 같은 토픽에만 소재를 집중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떻게 영화계에 입문했고, 어떤 신념을 갖고 일을 하며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는지 아주 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거시적인 영화사를 완성한다. <영화하는 여자들>의 저자 주진숙 원장, 이순진 연구자는 “가급적 많은 분야의 여성 영화인을 망라하려 노력했다. ‘작가’의 영화사 안에서는 ‘위인 서사/피해자 서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인터뷰집의 의의를 밝혔다. 책에 참여한 여성 영화인 중 심재명 명필름 대표·임순례 감독·문소리 배우·윤가은 감독을 줌(ZOOM) 화상채팅으로 만나 <영화하는 여자들>의 후일담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요르단에서 <교섭>을 촬영 중인 임순례 감독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화상채팅으로 만난 <영화하는 여자들>의 심재명 명필름 대표, 임순례, 윤가은 감독, 문소리 배우와의 대화는 씨네21 추석합본호 1274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