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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느닷없음, 어이없음, 알수없음…배우 구교환을 말하다①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0-12-28

구교환은 느닷없이 돌출한다. 우리가 극에서 예상하는 상식과 논리를 비켜가는 행동으로 보는 이를 당혹시킨다. 이를테면 <Welcome to my home>에서 스킨과 로션을 과장되게 바르는 손짓, 허리 디스크 있는 할머니를 옆에 태운 것처럼 조심히 운전하라는 장면 뒤에 진짜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오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애인을 죽였다고 착각하는 여자의 상상 속에 등장해 “보갱아~ 아이. 두부처럼 하얗게 살아야이~”라고 사투리로 말할 때의 능청스러움(<4학년 보경이>) 같은 것이 ‘구교환스러운’ 순간이다. 자신의 연출작은 물론 예술적 동지 이옥섭 감독과의 공동 작업물에서, 혹은 다른 창작자의 세계에 떨어졌을 때도 그의 인장은 늘 선명했다.

그리고 그의 뻔뻔한 돌연성은 불편한 브레이크가 아닌, 캐릭터와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였다.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어머니와 외간 남자의 섹스를 원치 않게 목격한 교환은 그다음 신에서 태연한 듯 혼이 나간 표정을 하곤 아이스크림을 급하지만 야무지게도 핥아먹는다. 기존 공식을 벗어난 구교환의 연기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문제작의 줄타기를 설득한다. 영화는 개인의 악마성에만 함몰되거나 혹은 그들도 시대의 피해자라며 감상적으로 연민하는 납작한 시선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을 매개해 ‘헬조선’의 현재를 조망한다.

“원래 세상일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연기 역시 그렇더라”는 구교환의 말은 그의 연기가 복잡다단한 현실의 폐부를 찌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삶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근거를 갖고 흘러가지 않고 비극적인 순간에도 어이없게 웃음은 터진다. 심지어 예상과 너무 달라서 그만의 개성이라며 종종 소환되는 목소리 얘기도 그 일부다. 중저음 톤으로 또박또박 말해야 왠지 근사하게 연기하는 것처럼 평가받는 이 업계에서, 구교환은 본연의 음성으로 연기함으로써 기대를 배반한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에는 당장 광고를 찍어도 괜찮을 것 같은 톤으로 말하는 사람들만 있지 않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구교환의 목소리는 그렇게 관객에게 각인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평범한 삶을 재현한다. 요컨대 구교환의 예측 불허한 연기는 현실과 괴리를 만드는 대신 오히려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진짜를 만든다. 비소수자의 포지션에 있는 배우가 허구의 트랜스젠더를 연기할 때 단지 외양과 행동을 ‘흉내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무거운 숙제를 해낸 <꿈의 제인>이 대표적인 예다. 제인은 따뜻하고 이상적이면서 동시에 붙임성 좋은 아는 언니처럼 친근하다 가끔 욕을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서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성립시킨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관객수 300만명을 돌파한 <반도>의 서대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구교환이 익숙한 장르영화 문법 속에 들어왔을 때 만드는 변칙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리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군인 캐릭터는 그간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구교환처럼 연기하는 배우는 없다. 첫 등장부터 입에 총을 물고 죽으려고 했던 캐릭터가 갑자기 등장한 부하를 보고 손주 재롱잔치를 보듯 반응하며 “잘한다~ 잘한다~”라고 리액션할 때,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미묘한 정서를 내비칠 때 서 대위는 <반도>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된다. 이미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반도>는 구교환의 원래 매력을 ‘반의반도’ 안 보여준 작품”이라며 그에게 더 무궁한 갈래가 있음을 강조하지만, 어떤 관객에겐 강렬한 첫 만남이 된 <반도>는 그가 요긴하게 쓰일 자리를 확장하고 증명한 자리가 됐다. 허준호와 함께 북측 캐릭터를 연기한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와 현재 출연 논의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전형성이 규모 큰 프로젝트에서 만들 파고를 기분 좋게 목격할 자리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구교환은 인터뷰하기에 쉽지 않은 배우다. 예상되는 흐름을 모두 비켜가며 전형적이지 않은 답을 내놓아 끊임없이 다른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가 던지는 질문의 단어 하나하나에도 귀 기울이고, “눈치를 되게 많이 보는 성격”이라면서 조심스러워하며, 자칫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을 할까 매 순간 경계하는 배우가 갖는 진실성은 남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구교환의 연기와 작품,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게 될 스타 구교환을 연결하는 가교일 것이다. 이어지는 대화는 그가 연기와 영화에 대해 전한 진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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